우공거사(牛公去寺)
최중호
농부가 밭갈이를 한다. 소는 목에 멍에를 걸고 줄에 연결된 쟁기를 끌고 간다. 쟁기 손잡이를 잡은 농부는 소가 이끄는 대로 쟁기를 따라간다. 소걸음이 늦을라치면 농부는 “이랴!”하고, 이따금 소리를 질러 소의 걸음을 재촉한다. 소는 꾀를 부리지 않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하는 가축이다.
예전에는 소를 생구(生口)라 불렀다. 생구란 한 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이 가축인 소를 생구라 부른 것은 소를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소는 주인을 위해 논과 밭을 갈아주고, 무거운 짐들을 운반해 주는 등, 농촌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자 재산의 일부였다. 그래서일까, 정월의 첫째 축일(丑日)에는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소에게 먹였다. 이처럼 농부들은 소를 가족처럼 여기며 사랑하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영농의 기계화로 농사도 경운기 등의 농기계가 맡아 농부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어, 농가에서도 예전처럼 소를 많이 부리지 않는다.
비가 온다. 그칠듯하면서도 그치지 않고 매일 같이 내린다. 이번 장마는 근래에 보기 드문 54일간이나 계속된 지루한 장마다. 그런 까닭에 여러 지방에서 폭우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가 사는 곳에도 산사태가 나 도로가 막히고, 집도 몇 채 파손되었다. 또한 인근에 있는 하천이 넘쳐 피해가 적지 않았다.
장마를 겪으면서, 어렸을 때 겪었던 홍수가 생각난다.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1959년 9월에 발생한 태풍 사라호다. 강물이 넘쳐흘러 마을 앞까지 들어와 온 들판이 너른 강으로 변했다. 강변에 둑이 없었기 때문에 강물은 지대가 낮은 집 부엌에까지 들어왔다. 그 집 사람들은 세간을 모두 챙겨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집에 옮겨놓았고, 그 이웃집 사람들도 집에 물이 들어올까 봐 큰 걱정을 하였다.
홍수가 나면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뒷산에 올라가, 팔짱을 끼고 흙탕물로 변해 흐르는 강물을 구경했다. 넓은 바다로 변해 버린 강물에는 집과 가축을 포함한 많은 부유물이 빠른 물살과 함께 하류로 떠내려갔다. 그 광경 중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온 가족이 초가지붕 위에서 두 손을 흔들며 “살려 주세요.”라고 울부짖던 애절한 목소리다. 하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해 급물살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루터에 빈 배는 있었지만, 노를 젓는 배였기 때문에 무섭게 흐르는 물살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급류를 따라 떠내려가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그 가족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너무 안타까운 장면이라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수해 장면이 TV 뉴스에 나온다. 홍수와 산사태로 집을 잃은 수재민과 들판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버린 장면도 보인다. 그중에는 지붕 위에 올라가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소들이 있고, 길을 따라 어디론가 떼 지어 가는 소들도 있다. 저 소들은 홍수를 피해 어디로 가는 걸까?
일연의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의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에서 속리산으로 가던 도중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소가 진표율사를 보자 가던 길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우는 것이 아닌가. 수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소의 행동이 이상해 진표율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며, 어찌하여 이 소가 스님을 보고 우는지요?”
이에 진표율사는 “나는 금산사에 있던 진표인데, 일찍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지장과 미륵 두 보살님 앞에서 친히 계법(戒法)*과 간자(簡子)*를 받고, 절을 지어 오래 수도할 곳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오. 이 소는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총명해서 내가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불법(佛法)을 중히 여겨 이렇게 꿇어앉아 우는 것이라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진표율사의 말을 듣고, “축생도 이와 같은 신앙심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가 어찌 무심하리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낫을 들어 스스로 자신의 두발(頭髮)을 잘라 버렸다. 그리하여 진표율사는 자비심으로 그의 머리를 깎아주고 계(戒)를 주었다.’고 한다.
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순식간에 사람들은 터전을 잃고, 홍수로 인한 수마(水魔)는 집과 농경지를 물로 덮어버렸다. 따라서 많은 수재민에겐 슬픔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엉겁결에 집에서 몸만 빠져나온 수재민들은 인근 학교나 공공기관의 강당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홍수는 축사에 있던 가축들에게도 여러 가지 이변을 낳게 하였다.
축사가 물에 잠기자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들이 많이 죽었다. 다행히 축사에서 빠져나온 가축들은 급류를 따라 떠내려가다가 목숨을 건진 경우도 있다. 전남 구례에서 기르던 어느 암소는 섬진강으로 떠내려가 55km나 떨어진 경남 남해군의 한 무인도에서 4일 만에 구조되기도 하였다. 또한 구례에선 폭우로 축대가 무너지자 축사를 빠져나온 소 10여 마리가 도로를 따라 먼 산길을 걸어 해발 531m에 있는 사성암으로 갔다. 소가 절로 간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공거사(牛公去寺)라 하겠다. 소가 사성암으로 가 유리광전(琉璃光殿) 앞마당에 모여 있다. 하지만, 소들의 눈빛이 애처롭다. 커다란 두 눈엔 이슬이 맺혀있는 게 아닌가.


TV에선 수해 지역 주민들이 이번 수해로 생명을 잃은 소 700여 마리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진혼제(鎭魂祭)를 올리고 있다.
소들이 사성암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계법(戒法) : 부처님이 정한 계율의 법
*간자(簡子) : 미륵보살의 손가락뼈
(2021. 그린에세이.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