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단명의 지리산함

여강 선생 2023. 7. 11. 21:50

           
                                                      단명의 지리산함

                                                                                                  최중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난다 해도 유족에겐 슬픈 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다면 그 슬픔이 더 크다 할 것이다. 어디 이런 일이 사람에게만 있다 할 것인가. 우리가 이용하는 자동차나 선박도 사고로 인해 사용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강릉에 있는 통일공원을 갔다. 그곳에는 군함, 전투기, 탱크 등 많은 군 장비가 전시되어 있었다. 

공군 안보전시관


  공군 안보단지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에 특이한 모양으로 된 조형물이 하나 있다. 704란 숫자가 쓰여 있는 군함 위에 함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망원경으로 전방을 탐색하고 있다.
  ‘무슨 사연일까?’ 생각하며 조형물 앞으로 가 보았다. 돛대 모양의 기둥(mast)에 ‘지리산함 전사자 충혼탑’이란 글자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조형물 앞에는 지리산함의 간단한 이력이 새겨져 있고, 뒤편엔 지리산함의 크기와 전적(戰績),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지리산함 전사자 충혼탑
지리산함의 주요 제원 및 전적


  지리산함(PC-704)은 적의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며 경계를 하는 300톤급의 작은 군함이었다. 해군 장병 및 국민의 성금과 정부의 보조금으로 미국에서 사들여 1950년 7월에 진해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가 한국전쟁 중이라 바로 해상전투에 참여해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작전 및 인천상륙작전 등 많은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비록 작은 군함이지만 여러 군함의 최선봉에서 용감히 싸웠기 때문에, 연합해군으로부터 ‘작은 고추가 맵다’는 뜻의 “고추함(Hot Pepper Ship)”이란 별명도 얻게 되었다. 전투 경험은 없었지만, 해군 용사들의 용감한 투지와 결전 의지로 이룩한 전공이었다.
  그렇게 용감하게 싸웠던 지리산함에게 운명의 날이 왔다. 1951년 12월 24일 지리산함이 부산항을 출항해 경계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25일 원산 앞바다로 들어갔다. 밤이 지나고 26일 새벽이 올 무렵이었다. 북한군이 바다에 띄워놓은 어뢰와 부딪쳐 지리산함이 폭파되면서, 그곳에 타고 있던 함장 이태영 중령과 장병 57명이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리하여 2013년 5월 해군에서 57 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넋을 기리기 위해 동해가 보이는 이곳에 충혼탑을 세웠다. 충혼탑 앞에서 57명의 영령께 고개 숙여 묵념을 올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부분 함정이 보통 50여 년의 현역 경력을 갖고 퇴역하는 데 반하여, 지리산함은 우리 해군의 함정 중 가장 짧은 1년 5개월의 경력을 갖게 된 비운의 함정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통일공원에 있는 지리산함은 못다 한 삶이 아쉬워 뱃머리를 동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2015. 수필문학.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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