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살기 좋은 집

여강 선생 2023. 8. 5. 10:26

                                                                                     살기 좋은 집
                                                                                                              최중호
  서대전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시간이 날 때면 가끔 이곳에 와 산책을 즐긴다. 집에서 걸어 5분이면 갈 수 있는 공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차례 이사를 했다. 어렸을 때는 교통이 불편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그 시절 시골은 대부분 교통이 불편했다. 일 년에 한 번 트럭도 보기 어려운 궁벽한 시골이었다. 유일하게 차를 볼 수 있었던 날은 동네 총각이 장가를 가거나 처녀가 시집을 가는 날 뿐이었다. 그것도 보기 좋은 자가용이 아니라 볼품없는 트럭이었다. 트럭 운전사는 옆자리에 신랑 신부를 태우고 동네 사람들이 어서 나와서 보라는 듯 클랙슨을 울리며 기세도 당당하게 동네로 들어왔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홍수로 강물이 집 앞까지 들어와 가슴을 조였고, 물이 빠져나간 후에야 마음이 놓였던 시골 강마을이었다.
  시장도 멀어서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없었다. 오일장이 서면 걸어서 5km나 떨어져 있는 읍내에 가 필요한 물건을 사 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집에선 편리한 점이 많았다. 시장이 가까워 필요한 물건을 사기 쉬웠고, 교통이 편리해 가고 싶은 곳도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읍내에 있는 집에서 생활할 기회가 적었다.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만 좋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10분만 걸으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밤늦게 막차를 타더라도 집에 가는 데는 별걱정이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몇 년 동안은 남의 집에 전세를 살았다. 둘이 살 때는 몰랐지만,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주인집 아이와 다툴 때면 난처한 경우가 있었다. 우리 아이가 잘못하지 않았다 해도 불리한 경우가 있었다. 주인집 아이와 다투면 그 결과는 주인집 아이에게 유리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상했고, 갑자기 전세금을 올려달라거나 집을 비워 달라고 할 때면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어렵사리 좁으나마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좁은 아파트였지만 방이 두 칸에 거실을 방으로 쓸 수 있어 서재 겸 내 방도 하나 생겼다. 이제 어린 딸로 인해 마음 상할 일도 없고, 전세금을 올려달라거나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신경 쓸 일도 없었다. 하지만 북향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았고, 인근에 대학이 있어 데모할 때면 최루 가스로 눈물을 흘릴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로 오르는 길이 경사가 심해 여름이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고, 겨울이면 미끄러워 넘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남의 집에 전세를 살 때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했다. 내 집이 있다는 것이 마음 든든했고 이사를 자주 하지 않아 좋았다.
  그 집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그동안 아이가 셋이나 되었고 살림도 늘어 이사 올 때만 해도 넓게 보였던 아파트가 이제 옹색해 보였다.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남향에다 방이 세 칸이나 되었고 거실도 넓었다. 옆에 유등천이 흐르고 있어 공기도 맑았다. 시간이 날 때면 운동 삼아 천변 길을 걸었고, 무더운 여름날 저녁이면 천변에 텐트를 치고 밥도 지어 먹으며 캠핑 온 기분을 즐겼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편리했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다. 버스 노선이 적어 시내를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각자 자신의 방을 원했다. 딸 둘은 방 하나를 같이 사용했지만, 아들도 자기 방을 원했고, 나도 서재가 필요했다. 가족 모두가 더 넓은 집을 원했다. 
  유등천이 있어 공기가 맑았고 둔치가 있어 운동하기 좋았던 아파트에서 10여 년을 거주한 후, 다섯 식구가 살만한 더 넓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우선 새집이라 좋았고 이사 온 뒤 얼마 안 돼서 지하철이 개통되어 편리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 사통팔달로 시내버스가 있어 어디를 가더라도 편리했다. 게다가 10분 거리에 대학병원이 두 곳이나 있고, 일반 병원도 여러 곳 있어 몸이 불편해도 번거롭지 않았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백화점과 대형할인점도 두 곳이나 있다. 게다가 서대전역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 장거리 여행을 할 때도 좋았다.
  산책 겸해서 휴식하기 좋은 서대전 공원이 5분 거리에 있다. 그곳에선 봄, 여름, 가을까지 공연이 자주 있어 노년의 무료함을 달래기에 좋았다. 가볍게 등산을 하고 싶으면 20여 분만 걸으면 보문산이 있다.
  남들은 나이가 들어 전원생활을 좋아하지만 나는 이 집에서 도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 집에 거주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 남향이라 햇볕도 잘 들어 겨울에도 따뜻하다. 전에 살던 집에선 꽃이 잘 피지 않던 식물도 이 집에선 꽃이 잘 핀다. 난은 물론, 산세비에리아와 금전수, 행운목까지 해마다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식물이 잘 자라는 집은 사람 살기도 좋은 집이 아니겠는가. 사는 동안 큰 불편함을 모르고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집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 집에 살면서 이제는 집에 대한 욕심이 필요 없게 되었다. 집이란 사람이 생활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처음에는 집을 소유했다는 것에 만족했으나 살아가면서 편리함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집이야말로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은 나에겐 과분한 집이요, 참으로 살기 좋은 집이다.

                                                                           (2017. 한국수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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