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배신자가 보내준 선물

여강 선생 2021. 7. 14. 08:45

                                                        배신자가 보내준 선물

                                                                                                최중호

 
 그는 긴 겨울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포천의 한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았다. 높고 화려했던 꿈은 얼마 전에 접었다. 날개를 펴 높고 너른 세상을 화려하게 날아보려 했지만, 세상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군고구마를 하나라도 더 팔아야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군고구마 파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군고구마 사세요. 달고 맛있는 고구마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다. 그는 추위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어느 방송사에서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란 프로가 주 1회씩 3개월 동안 방영된 적이 있다. 나도 한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 프로를 즐겨 보았다. 그는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에 도전하였다. 예선전에선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사연의 「바램」이란 노래를 불렀다. 대부분 출연자는 노래를 잘했다. 그도 노래를 잘해 예선 및 준결승을 거쳐, 최종 7명을 선발하는 결승전까지 올랐다.
 결승전은 마스터(심사위원) 총점에다 대국민 응원 투표와 대국민 실시간 문자 투표를 합해서 최고점을 받은 자가 1위인 진(眞)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승전 중간 집계인 마스터 총점과 대국민 응원 투표를 합한 점수에서 1위를 하지 못했다. 1위는 걸쭉한 목소리로 꺾기를 잘하던 ㅇ군이 차지했다.
 본래 결승전은 3월 초에 할 예정이었다.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방청객과 참가자들의 감염 예방을 위하여, 결승전 날짜를 3월 중순으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방송사에서도 결승전 날짜를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결승전을 기다리는 많은 시청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승전은 감염 예방을 위해 방청객 없이 참가자와 심사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실시하게 되었다.
 드디어 결승전 날이다. 그는 결승전에서 「배신자」란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사를 보면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라는 구절이 있다.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버리고 매정하게 떠난 후, 남자가 여자를 원망하며 실연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노래의 가사와는 다른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이 노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장난삼아 자주 불러줬던 노래라고 한다. 그는 평소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 노래를 부르면 아버지가 생각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저버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어머니에겐 배신자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가슴 속에 깊은 한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 그래 어머니와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결승에 참가한 7명의 가수가 순서대로 노래를 불렀다. TV에선 노래가 시작되기 전과 간주곡이 나갈 때마다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를 동영상으로 보여 줬다. 그의 가정환경과 어머니가 운영하는 헤어숍도 보여줬다. 어려운 환경에서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그를 키워줬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결승전에서 평소엔 한이 맺혀 부르지 않았던 「배신자」란 노래를 부른다. 남편 없이 살아가는 어머니의 가슴 아픈 심정과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자신이 겪었던 어려웠던 일들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 것이다. 높아졌다가는 낮아지고,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감성 어린 목소리. 그 높고 낮은 목소리에 많은 감정이 몰입되어 있다. 그런 그의 목소리는 많은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심금을 울렸다. 눈물이 그의 가슴을 적신다. 이어 어머니의 서러운 마음까지 더해 눈물로 흐른다. 그는 감정이 북받쳐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 모습을 보는 전국의 많은 시청자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가슴을 적시면서, 그의 노래를 들었다.
 결승전에 올라온 7명이 모두 노래를 불렀다. 이제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진(眞)을 뽑는 일만 남았다. 사회자가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결승전 최종 집계인 대국민 실시간 문자 투표를 합산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청자가 한꺼번에 접속하는 바람에 서버가 마비되고 말았다. 그래 최종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결승전 날이 바로 그의 아버지 기일이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면, 결승전은 처음 예정한 대로 3월 초에 실시했을 것이다.
 그는 결승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생각하며 「배신자」란 노래를 불렀다. 그 결과 자신의 이름처럼 영웅이 되어, 영광의 진을 차지한 것이다. 아버지의 기일에 부른 「배신자」란 노래가 무명가수였던 그를 일약 트롯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배신자가 자신의 기일에 아내와 아들에게 보내준 선물은 아닐까?
                                                                                                    (2021. 한국수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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