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불효자의 해외여행

여강 선생 2021. 12. 7. 19:58

                                                          불효자의 해외여행

 

                                                                                                          최중호

  책장 속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하나 있다. 어머니의 모습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 책장 속에 넣어 보관해 왔던 것이다.

  얼마 전 대전효문화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효자, 효부들에 관한 사연을 그림과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그중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 구경을 시켜드리는 아들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들고 중국 여행을 하는 아들의 모습도 있었다.

  나는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젊었던 어머니는 위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시누이와 시동생 다섯에 자식 사 남매를 부양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 어머니는 속을 많이 썩어 가슴앓이를 자주 하셨다. 어머니는 가슴에다 물 적신 수건을 얹어놓고, 그 위에 뜨거운 다리미를 올려놓은 후, 큰 한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셨다. 어머니의 앓는 소리는 나에겐 큰 두려움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나는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다. 어머니가 빨리 낫기를 기다리며, 내 수명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어머니한테 드리게 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장한 후에도 내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한테 좋은 소식을 하나라도 더 전해드릴까 하고, 노력하며 살았다. 하지만 생활에 쫓겨 어머니한테 소홀한 면도 있었다. 그렇게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가 8년 전에 나의 곁을 떠나셨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겨 그동안 가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몇 차례 다녀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해외여행 한 번 보내드리지 못하고, 나만 여행을 다니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만 했다. 그런 마음에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책장 속에 넣어 보관해 왔던 것이다.

  대전효문화원에서 효자들의 모습을 보고 돌아와 나는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하였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시내로 나가 사진틀 하나를 사 왔다. 어머니 영정 사진을 사진틀 속에 넣은 후, 벽에다 걸어 놓았다. 비로소 어머니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신다.

  며칠 후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 가서 백두산과 더불어 고구려, 발해 유적지 및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 등을 돌아볼 예정이다.

  그때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모시고 가야겠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몇 년 동안 중국에서 사셨다. 어머니가 사셨던 선양에는 가지 못하지만, 하얼빈과 단둥지역도 어머니는 낯익은 곳일 것이다. 이번에 그곳을 다녀온다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것 같다.

  내일 여행을 떠난다. 밤늦게까지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가방에 넣고, 어머니 영정 사진은 여행 가방에 넣지 않고 쇼핑백에 잘 모셔놓았다. 여행 준비를 하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처음 떠나는 여행도 아닌데 왜, 잠이 오지 않을까? ‘어머니가 처음 해외여행을 가시니까 마음이 설레어 잠을 못 주무시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잠자리를 여러 번 설치다가 새벽 5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올 시간이 좀 남아 있어 여권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여권이 없다. 황당하였다. 분명 며칠 전에 상의 호주머니에 여권을 넣었는데 없다. 아내에게 버스표를 30분 후의 것으로 교환해 놓으란 부탁을 하고 집으로 갔다.

  지금 입고 있는 옷과 함께 겹쳐서 걸어 놓았던 다른 옷의 호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그곳에 여권이 있었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간밤에 내가 잠을 설친 것은 어머니가 처음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여권을 다른 옷에 잘못 넣어서 여행을 떠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잠을 못 이루신 것 같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오후 1시경 하얼빈 공항에 도착했다. 하얼빈역 구내에 있는 안중근기념관으로 갔다. 영정 사진을 두 손으로 들고 관람하다 보니 사진 촬영 등 여러 가지가 불편했다. 그래 끈을 하나 구해 사진틀 위에 꿰어 목에 걸고 다녔다. 하얼빈의 중앙대가 등 거리를 다닐 때도 어머니 영정 사진을 목에 걸고 다녔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궁금한 눈길로 영정 사진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사람이 많이 모인 광장에선 사람들이 사진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어 어머니라고만 대답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말을 했다.

안중근 기념관에 있는 안 의사의 전신상(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모습)
압록강변에서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에서
장수왕릉
하이린시의 김좌진 장군 생가

  압록강 변에서는 어느 중국 사람이 같이 사진 촬영을 하자고 해서, 촬영도 하였다.

  이렇게 중국에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하얼빈과 뤼순의 안중근 의사 유적지 및 지안의 고구려 유적지, 하이린(海林)시의 김좌진 장군 유적지 등을 돌아보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 사진을 다시 벽에 걸어 놓았다. 어머니는 처음 다녀온 해외여행인데도 피로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다음 여행길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떠나야겠다.

 

                                                    (2020.수필문학.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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