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그림자
최중호
몇 해 전부터 대마도에 있는 박제상(朴堤上) 공(公)의 순국비를 찾아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미루다가 이번 겨울에서야 가게 되었다.
몇 군데 대마도 관련 여행사에 코스를 문의해 봤지만, 대부분 여행사에선 박제상 공의 순국비가 있는 곳은 가지 않는다 했다. 그곳은 외딴곳이라서 그곳을 가게 되면 되짚어 나와야 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한 팀당 여행 인원은 일곱 명 이상이 되어야 출발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 우리 가족이 다섯 명이라 했더니 나머지 인원은 여행사에서 모집하기로 하고, 순국비가 있는 곳까지 가기로 하였다.
부산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대마도의 이즈하라 항으로 가는 배를 탔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1월에는 파도가 심해 출항을 못 하는 날도 많은데, 오늘따라 날씨도 좋고 물결 또한 잔잔하다고 했다. 배가 부산항을 출발해 망망대해로 나간다. 점점 멀어져가는 부산항을 바라보며, 그 옛날 신라 충신 박제상 공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가 있는 왕자 미사흔(未斯欣)을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아내에게 말도하지 않고 일본으로 떠나는 박제상. 뒤늦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바닷가로 뛰어갔으나, 남편을 태운 배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로 떠나가고 있었다.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는 아내의 울음소리가 공의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공은 아내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사공에게 빨리 노를 저을 것을 재촉한다. 처절한 아내의 울음소리가 공의 애간장을 태우고, 뱃머리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공의 마음을 심란케 했다.
인간에게 가장 괴로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별이라 했다. 그 이별 중에도 만날 기약조차 없는 생이별은 더욱 괴롭다 하였다. 하지만 공을 태운 배는 이런 사연을 모른 채 파도의 너울을 따라 일본으로 가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사지(死地)로 보내며 통곡하는 아내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 갈 무렵, 산처럼 높은 파도가 뱃머리를 때린다. 무섭게 달려드는 검푸른 파도가 장차 공에게 다가올 일본에서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공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때, 배가 곧 이즈하라 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항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푼 후, 간편한 복장으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적을 비롯해 몇 군데 시내 관광을 하였다.
이즈하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 일찍 버스로 박제상 공의 순국비가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가 울창한 산림 속을 달린다. 좌우를 둘러봐도 들판은 보이지 않고 산과 나무로 둘러싸인 깊은 터널 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단조롭게 펼쳐지는 시야가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버스는 대마도의 서북부에 있는 가미아가타마치를 향해 계속 달린다.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일본으로 간 박제상 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공은 일본에 도착한 후 신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 온 배신자 행세를 하며 물고기와 새를 잡아 일본 왕에게 바쳐 신임을 얻는다. 그리하여 미사흔과 접촉할 기회를 얻어 그와 함께 사냥을 하고 바다로 나가 고기도 잡았다. 공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사흔이 신라로 탈출할 때 필요한 노 젓는 기술과 뱃길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새벽, 공은 미사흔에게 오늘이 신라로 탈출하기에 알맞은 날임을 알려 주었다. 이에 미사흔은 공에게 같이 갈 것을 제안했으나 공은 일본인들이 알아채고 뒤쫓아 올 것을 염려해, 그곳에 남아 그들의 추격을 따돌리기로 하였다.
미사흔을 무사히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 공은 미사흔이 거처하던 방에 들어가 있었다. 날이 밝자 일본인들이 미사흔이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만, 공은 미사흔이 어제 사냥을 한 까닭에 피로해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한낮이 지나고 저녁때가 되어도 미사흔이 보이지 않자 이를 수상히 여긴 일본인들이 다시 확인하러 왔다. 그때야 공은 미사흔이 신라로 돌아갔음을 알려 주었다.
이에 화가 난 일본 왕은 공을 감옥에 가두고 회유와 심문을 계속했지만, 공은 일본 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공은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일본 왕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일본 왕은 공의 발바닥 가죽을 벗겨낸 후 갈대밭을 걷게 했고, 불에 달군 철판 위에 올려놓고 다시 설득해 봤지만, 공은 끝까지 신라의 신하임을 주장하다 죽임을 당했다.
한나라의 신하 주가(周苛)가 초나라 군사들에게 잡혔을 때, 초왕이 나의 신하가 되면 많은 땅과 벼슬을 주겠다고 설득했지만, 그는 유방의 신하임을 주장하다 죽었다. 공도 주가의 충절에 못지않았다.
버스가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가미아카타마치의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해안으로 나온다. 바다와 산이 인접한 풍광이 좋은 해안도로다. 그 도로를 따라 얼마쯤 왔을까? 시골의 한적한 포구가 보인다. 이곳에선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마저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하게 감싸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가 바로 공의 순국비가 있는 가미아가타마치의 사고미나토란 마을이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쪼이는 나지막한 산자락 아래 광장에 공의 순국비가 있다.
毛麻利叱智*
비(碑)에는「신라국사 박제상공 순국지비(新羅國使 朴堤上公 殉國之碑)」라 새겨져 있었다.

순국비 옆으론 푸른 바다가 있고, 비 앞 건너편 센보우마키산 정상엔 풍력발전기 두 대가 바람을 안고 돌아가고 있다. 순국비는 앞산 정상에 있는 풍력발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둥근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날개. 그 날개에서 손사레질 하며 떠나던 미사흔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두 손을 흔들며 떠나던 미사흔. 생명의 은인을 사지에 남겨두고 떠나는 그의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작은 배에 탄 미사흔은 눈물을 흘리며 공에게 바로 뒤따라 와달라고 부탁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공은 미사흔이 탄 배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미사흔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공의 순국비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적한 바위들로 둥글게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비를 세웠다. 대마도가 고구마의 특산지라서 그런지 순국비도 고구마 모양으로 된 자연석이다. 순국비 뒤에는 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사시사철 푸른빛을 띠고 있는 동백은 변하지 않는 공의 마음을 나타내려는 것일까? 푸른 잎들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붉은 동백꽃이 돋보인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단심(丹心)이라 한다. 여기서 단(丹)이란 붉은 색깔로 지조와 충성심을 의미한다. 많은 잎 사이에 붉게 핀 동백꽃은 신라 백성 중에서 으뜸으로 꼽혔고, 일본 왕의 회유와 설득에도 굽히지 않았던 공의 변치 않는 충성심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순국비는 그리운 신라 땅을 바라보며 외로이 서 있었다.
치술령(鵄述嶺)에서 공을 기다리다 망부석(望夫石)이 되어버린 부인이 동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면, 공의 순국비는 신라가 있는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 칠월 칠석날에는 만날 수가 있다던데, 공과 부인은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영혼은 그림자가 없다. 살아생전 그가 남긴 유업이나 발자취가 남아있을 뿐이다. 공의 자취가 이곳에 순국비로 남아있었다.
신라 쪽에서 밝은 햇살이 비추고 그 빛을 받은 순국비가 더 뚜렷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공이 남긴 영혼의 그림자는 이곳 대마도에서 신라 땅으로 돌아갈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 전에 의하면 미사흔과 박제상은 처음엔 일본 본토로 갔으나, 일본 왕이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신라의 지리에 밝은 박제상과 미사흔을 앞장세워 일본에서 대마도로 건너와 전쟁준비를 하던 중, 박제상이 미사흔을 대마도에서 탈출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 : 비문에 박제상공이란 글씨와 함께 나란히 쓰여 있는 글씨로, 일본서기에 의하면 사신의 이름을 말한다.
(2009. 한국수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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