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백마를 탄 단종(端宗)

여강 선생 2020. 10. 23. 14:04

                                                           백마를 탄 단종(端宗)

                                                                                            최중호

  옛사람들은 백마를 승천하는 영혼의 안내자로 믿어 왔다. 유럽이나 인도, 고구려 시대 무덤과 경주의 천마총에도 백마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정에 나타난 백마는 단종의 영혼을 싣고 가는 그림일 것이다. 단종의 영혼은 백마를 타고 어디로 가며, 그 밑에 있는 노인은 누구란 말인가?
  슬픔에 젖은 소나무가, 한양의 궁궐 쪽으로 더 긴 가지를 뻗치고 있다는 영월을 찾은 것은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낯설고 물선 곳을 달려와 지쳤는지, 잠자리가 바뀌었는데도 쉽게 잠이 들었다.
  새벽녘 빗소리가 단잠을 깬다. 밖에 내리는 비는 멀리 찾아온 나그네를 반겨 흐르는 단종의 눈물인가, 그치길 기다려도 그칠 줄 모른다.

영월에 있는 장릉(단종의 능)

  이른 아침, 비를 맞으며 단종의 능이 있다는 장릉(壯陵)으로 갔으나 문이 닫혀 있다. 내친걸음에 청령포로 향했다. 그곳은 단종이 처음 유배되어 두 달 정도 머물던 곳이다.
  휘어 감긴 안개 자락 사이로 육육봉(六六峯)은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건만, 앞에 흐르는 강은 말이 없다. 서강은 흘러 남한강이 되고, 다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가건만, 단종의 애달픈 사연을 서울에 있던 정순왕후 송씨에게도 전해 줬을까?
  강가엔 사공 없는 빈 배만 매여져 있다. 때문에 금표비와 비각은 보지 못하고, 강변에 있는 소나무 숲으로 갔다.
  그곳엔 회색빛 바위로 된 비 하나가 빗물로 얼룩져 있다. 그런데, 비가 잘못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대부분의 비가 사람의 눈길이 쉽게 닿는 쪽을 정면으로 하여 서 있게 마련인데, 이 비는 돌아 서 있는 것이었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쪽은 뒷면이요, 정면은 강물이 흐르는 낭떠러지 쪽으로 가서 봐야만 했다.
  ‘어째서 비를 이렇게 세웠을까?’ 하고, 비 세운 사람들을 탓하며 낭떠러지 쪽으로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자연석으로 된 큰 바위에는 ‘왕방연 시조비’라 새겨 있고, 사각으로 된 중간석에 그의 시조가 새겨져 있었다.
  ‘千萬里 머나먼 길의 / 고은님 여희옵고 / 내ᄆᆞ 음 둘듸업셔 / ᄂᆞᆺ가의 안쟈시니 / 뎌물도 내안 ᄀᆞᆺ도다 /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시조비

  시조를 음미해 본다.
  왕방연은 금부도사로서 대세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수양대군의 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했지만, 진정으로 단종의 유배를 슬퍼했던 것 같다.
  비가 향하고 있는 쪽을 바라보니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다.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듯, 시조 비는 단종이 계셨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니 청령포로 넘어오는 고갯마루에 있던 생육신 조여(趙旅)의 비도 청령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비를 세운 사람들의 깊은 뜻을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여기는 왕방연이 단종을 여의고 설은 마음에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자리일 것이다. 이곳에 왕방연은 가고 없고 시조비만 그를 대신하여 눈물짓고 있었다.
  사공이 나오려면 아직도 멀었나 보다. 강을 건너 애틋한 단종의 심사를 느껴 보고 싶었으나, 그리하지 못하고 강변을 따라 계속 걸었다.
  비는 내려 땅을 적시고, 안개는 쉴 곳을 찾아 그윽한 산자락을 휘감고 있는데, 어디선가 뻐꾸기 한 마리가 구슬피 울고 있다.
  촉나라 망제(望帝)가 신하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쫓겨나 그 원혼이 자규가 되었다는데, 그 자규는 어디 가고 뻐꾸기만 울고 있나.
  영월 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단종이 승하한 후 그 혼령이 경치 좋은 어라연을 돌아볼 때 갑자기 고기떼가 나타나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한 나라의 임금이었는데 액운으로 화를 입었사오니, 영계(靈界)에서라도 태백산 신령이 되어 태백산맥이 미치는 모든 곳을 다스려 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 오니 지체 마시고 곧 태백산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단종은 용마굴에서 나타난 백마를 타고 동쪽의 태백산으로 간다. 이때 머루를 따서 단종께 진상하려고 내려오던 한 노인이 단종을 만나, “전하 어인 행차이옵니까?”하고 물으니 단종은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 후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노인은 황급히 단종이 사는 곳으로 달려갔으나 단종은 이미 승하한 후였다. 그리하여 그도 단종을 따라 자결하여 신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영모전에 모셔진 단종의 영정은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가는 단종의 모습이시다. 그 아래 고개를 숙이고 머루 바구니를 받쳐 든 노인은 한성 부윤을 지냈던 추익한(秋益漢)으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었을 때, 자주 찾아뵙고 진상을 했다는 분이시다.
  단종은 자규시(子規詩)에 애달픈 심정만 남겨 두고 정말 태백산으로 떠나신 것일까.
  울적한 마음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앞엔 서강이 흐르고, 그 뒤로는 육육봉(六六峯)의 험준한 절벽이 있어, 설령 단종이 그곳을 벗어나려 해도 그리할 수 없는 천연 요새의 유배지다.
  머리 위로 모여드는 구름 조각들을 보며, 단종이 청령포에서 꾸었다던 꿈 생각을 해본다. “육육봉에 구름이 머물거나 청령포의 여울 소리가 흐느껴 울 때면, 신들이 문안드리고 간 줄 아시라.” 했다던 사육신의 모습이 곧 보일 것만 같다.
  단종도 자규도 없는 청령포의 하늘엔, 먹구름 조각들이 머물다 동쪽으로 간다. 사육신이 모여 태백산으로 단종께 문안드리러 가는가 보다.
  뻐꾸기가 다시 운다. 그 울음소리는 점점 더 처량하게 들린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한다. 개개비나 때까치가 튼 둥지에 몰래 와서 알을 낳고는, 개개비나 때까치의 알보다 며칠 먼저 부화하여, 둥지에 있던 다른 새의 알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수양대군도 어린 단종의 보위를 넘겨보다 자신이 차지했고, 그 보위를 자신의 후손으로 유지케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듯 수양대군도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뻐꾸기는 누구를 찾아와 그리 슬피 우는가. 이미 단종은 맺힌 한을 망향탑*에 묻어 두고,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가셨는데. 그의 한이라도 달래고자 망향탑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 같다.
  먹구름이 걷히자 비도 그쳤고, 이제 육육봉도 서서히 안개를 걷고 얼굴을 내민다.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뻐꾸기도 태백산으로 날아간 모양이다.

* 천제단 : 태백산 정상에 있는 제단. 우리나라 건국 신화와 관련된 환웅 천황(桓雄天皇)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잡았다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단종의 비를 그곳에 세우지 못하고 그 아래쯤에다 세웠다고 한다.
* 망향탑 :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서울의 궁궐을 그리워하며 산기슭에 흩어진 돌을 주워서 쌓았다는 탑.


                                                                              (1994. 수필공원. 봄호)




 

 

 

 

'최중호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의 그림자  (0) 2021.03.14
돌아온 밀사(密使)  (0) 2021.01.03
세 번 피는 꽃  (0) 2020.08.11
노인의 선물  (0) 2020.06.03
가문의 명예를 건 패션 쇼  (0) 2020.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