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향기로운 사람

여강 선생 2025. 8. 30. 20:41

                                                                향기로운 사람  

                                                                                  최중호
   꽃향기는 가까이 갈수록 향이 짙고, 어진 사람의 향기는 멀리 있거나 세월이 흘러도 은은히 퍼져 나간다. 
  세월은 풍습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마저 변하게 하는가. 예전 같으면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싸움 뒤엔 항상 걱정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화해하고 쉽게 해결할 일도 피해보상을 받은 후에야 일을 마무리 짓게 되니, 뒷맛이 씁쓸할 뿐이다. 
  이럴 땐 향기로운 사람이 그리워진다. 
  25년 전 ㅊ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교장 선생님이 부르셨다. 경력이 짧은 교사에겐 교장실 출입이 그리 쉽지 않았다. 무슨 잘못이 있거나 학생문제가 있을 때 불려가는 곳이라 긴장이 되었다. 
  “그 반에 ㅅ군이란 학생이 있는가?”
  “예.” 
 그 학생이 이웃 학교 1학년 학생을 때렸다고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단다.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면 큰 사건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ㅅ군은 의붓아버지 밑에서 생활하며 낮엔 학교에 나와 공부를 했지만, 밤에는 홍명상가 앞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가난했지만 마음은 올곧고 성실했다. 언젠가 가정방문을 하고 돌아올 때였다. 음료수 한 병을 사 들고 뒤쫓아 오며 마시고 가라던 ㅅ군. 그런 그가 1학년 학생을 때렸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등교하는 만원 버스에서였다. 버스가 갑자기 멈추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밀리면서 이웃 학교 1학년 학생이 ㅅ군과 부딪쳤다. 그러자 1학년 학생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밀치며 ㅅ군에게 욕을 했다. 하지만 ㅅ군은 어린 학생이라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못 본 체하였다. 그러길 여러 차례,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ㅅ군이 더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한 방 날렸던 것이다.       
  ㅅ군과 함께 피해자 학생의 집으로 갔다. 부유한 집은 아니었지만, 예의를 갖춰 우리를 맞아 주었다. ㅅ군이 무릎을 꿇고 피해자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정신지체아인데, ㅅ군에게 맞아 코뼈에 금이 가고 이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러니 치료를 해 달라는 것이다. 치료를 해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하지만 그 당시 80만 원이란 돈은 ㅅ군의 가정 형편상 낼 수가 없는 큰돈이었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민을 하였다. 
  돈만 있다면 쉽게 해결될 일인데…. ㅅ군의 가정형편을 자세히 이야기한 후, 하는 수 없이 나와 반 학생들이 서로 협조해 치료비를 마련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피해자 어머니는 그럴 순 없다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ㅅ군도 내 자식과 같고 내 자식도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라며, 치료비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ㅅ군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라며 격려까지 해주었다. 
 향기가 난다. 어진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다. 생활에 활기를 주고 기쁨을 준 마음에서 풍기는 향기다. 오늘도 나는 25년 전에 뿌린 그 향기를 맡는다.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가.       

                                                                        (2007. 수필문학.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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