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김부운포지교(金父運抛之敎)

여강 선생 2025. 8. 27. 21:45

          
                                                      김부운포지교(金父運抛之敎)

                                                                                                     최중호
  출근길 교문 옆에 개인택시 한 대가 서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아침부터 학교 앞에서 차를 타는 손님이 몇이나 된다고 기다리는 걸까? 그러고 보니 택시 안엔 운전사도 없다. 무슨 볼일이 있어 차를 잠시 세워 두고 어딜 간 모양이다.
  퇴근길에도 개인택시는 교문 옆에 서 있다. 출근길에 본 바로 그 택시다. 이튿날 아침에도 개인택시는 교문 옆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개인택시가 운행은 하지 않고 온종일 교문 옆에다 차를 세워 두는 걸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어 그대로 지나쳤다. 
  다음 날 아침에도 택시는 교문 옆에 서 있었다. 차를 주차하려면 집이나 차고에 주차할 것이지 왜, 하필이면 교문 옆에다 주차했을까? 궁금한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하루는 경비실에 들러 아저씨한테 개인택시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는 충북 보은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인데 그의 아들이 본교에 다닌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학교엔 잘 가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에서 놀다가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고, 때로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들의 이런 행실이 마음에 걸렸다.
  ‘아들 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할 바엔 돈은 벌어 무엇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들이 정신을 차려 학업에 열중할 때까지 영업을 포기하고, 아들을 등·하교시키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아침에 보은에서 아들을 싣고 대전으로 와 등교를 시킨 후,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 주변을 맴돌며 아들을 기다렸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자 아들도 아버지의 정성에 감동해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다. 하루는 아들이, “아버지, 앞으로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할 테니 이제 제 걱정은 마시고 택시 영업을 계속해 달라.”고 하였다.
  개인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선 중기의 명필 한석봉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석봉이 어렸을 적 관음사란 절에서 3년 동안 공부를 한 후,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고, 그동안 배운 글솜씨 또한 보고 싶었다. 그래 불을 끄고 나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글씨를 썼다.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모두 크기가 같고 모양이 일정했으나 아들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어머니는 모처럼 돌아온 아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반기고 싶었지만, 아들의 장래를 위해 끓어오르는 모정을 무거운 납덩이로 누르며 아들을 꾸짖어서 돌려보냈다. 밤길에 어린 아들을 보내놓고 흐느끼는 어머니, 어머니를 원망하며 돌아선 아들이지만 어머니와 아들의 인내가 훗날 조선 시대의 명필을 탄생시킨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또한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친 어머니의 숨은 지혜가 아닐 수 없다.
  한석봉이나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공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이렇듯 어머니들의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개인택시 운전사는 눈앞에 보이는 돈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오직 아들을 바르게 가르쳐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침저녁으로 아들을 등·하교시켰다. 그는 아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에 아들이 하루빨리 마음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돌아오기만 기원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엔 개인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버스를 타고 등교한 모양이다.
  우리는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 하여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 한다. 그렇다면, 김군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 운전까지 포기했으니 김부운포지교(金父運抛之敎)가 아닌가.

                                                                                                   (2021. 그린에세이. 11,12월호)

  

'최중호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중가요 전성시대  (0) 2025.09.23
향기로운 사람  (15) 2025.08.30
금요 장터  (12) 2025.08.09
초승달  (20) 2025.07.24
최중호 수필집 《멈춰진 시계의 비밀 》 발간  (0)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