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해병의 신화와 애기봉 유래
최중호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에 있는 ‘해병대김포지구전적비’를 찾았다.
전적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무적해병’란 표어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붉은 바탕에 노란색 글씨다. 여기서 바탕의 붉은색은 끓는 피와 정열을 상징하고 노란색 글씨는 땀과 인내를 상징하고 있다.

계단 위에 세워진 ‘무적해병’이란 표어는 해병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말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많이 보고 들어 본 용어다.
이 표어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난공불락이라 자랑하던 강원도 양구 북방 도솔산 전투에서 미 해병 제5연대가 참전했으나 거듭 실패를 하였다. 이에 김대식 대령이 지휘하는 한국 해병 제1연대가 참전하여 17일간의 사투 끝에 도솔산을 점령함으로써 치열했던 도솔산 전투는 한국 해병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그래서 고 이승만 대통령이 국방 장관과 미8군 사령관을 수행하고 해병 제1연대를 방문해 그 공적을 치하하고, ‘무적해병’이란 휘호를 내린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 온 ‘무적해병’의 신화는 그렇게 해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단을 따라 전적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산은 초록색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푸르고,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들려온다. 언제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냐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평화를 얻기까지에는 우리 국군 용사들의 피로 얼룩진 숭고한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봉우리에 있는 전적비를 바라보았다. 세 개의 흰색 기둥으로 된 높은 전적비 앞에 해병용사가 한 손에 총을 치켜들고 “돌격 앞으로” 외치면서 진격하는 자세다. 해병 용사의 모습을 보며 그 당시 전쟁 상황을 그려 보았다.
1950년 9월 21일, 수도탈환작전에 참가한 해병대 제1연대 제3대대 용사들은 김포비행장을 공격하는 적 2개 대대를 격파하고 김포와 강화도를 장악한다. 그리하여 인천에서 상륙한 부대가 서울탈환을 위해 안전하게 경인가도로 진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해병대 독립 제5대대 용사들은 1951. 3. 7일부터 김포지구 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 잔적을 소탕하고 김포반도를 장악한 뒤‚ 휴전이 될 때까지 수도권 방어에 기여하였다.
강원도 양구의 도솔산 전투에서 승리했던 해병 제1연대는 이곳 김포지구 전투에도 참전해 많은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전적비로 올라가는 계단에 해병 제1연대의 상징인 ‘무적해병’이란 표어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전적비를 다시 바라보았다. 세로로 ‘해병대김포지구전적비’라 쓰여진 글자 위에 해병대 마크가 선명하게 보인다. 해병대의 상징인 독수리와 별, 그리고 닻이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독수리는 해병대의 기상인 용맹성과 승리를, 별은 해병대의 사명인 지상 전투를, 기울어진 닻은 해양 또는 해군을 상징하며, 해병대 고유의 임무인 상륙작전 개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의미가 있는 이야기다.
전적비 앞에 돌진하는 자세로 서 있는 용감한 해병 용사의 모습에서 승리의 기쁨을 함께 외치던 해병 용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곳에서 내려와 애기봉 전망대로 갔다. 앞에는 조강이 흐르고 그 건너에 북녘땅이 보인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우리 땅이다.
청나라가 침략해 왔던 병자호란 때 이야기이다. 당시 평안감사는 전투에서 패배한 후, 굶주린 병사와 피난민을 이끌고 한양으로 내려오던 중, 개풍군에서 청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때 감사와 함께 내려오던 감사의 사랑하는 여인 ‘애기(愛妓)’는 강을 건너 이곳 조강 나루에 도착하였다. 그 후 애기는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며 감사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감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애기’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임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산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한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이곳을 방문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슬픈 애기의 사연을 듣고 봉우리 이름을 ‘애기봉(愛妓峰)’이라고 짓고, ‘애기봉’이란 친필 휘호를 내려 비석을 세웠었다고 한다.
임의 모습을 그리다가 죽은 후에도 임이 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애기의 슬픈 사연이 전해져 내려오는 봉우리가 바로 애기봉이다.
애기봉이라 새겨진 비 옆에 청룡부대의 비(碑)도 세워져 있다. 청룡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비에 새겨 놓았다. 비가 바로 한 편의 수묵화처럼 보였다.



청룡부대 비 옆에 망배단이 있다.
이곳에서 실향민들은 고향인 북녘땅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을 흘렸을까? 단(壇) 위에 실향민들이 흘린 눈물과 가슴 깊이 맺힌 한이 주저리주저리 놓여있는 것 같다. 망배단에 제수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하던 실향민들의 아픔을 되뇌어 보았다.

바로 앞에 보이지만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바라본다. 그곳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의 눈물과 평양감사를 사랑했던 ‘애기’의 눈물이 함께 모여 조강으로 흐른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실향민들의 아픔도 사라지고, 이곳에 놓여있는 망배단이 남·북 분단의 유물로 남겨질 그 날을 기다려본다.
(2019. 해군.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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