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찾은 김 소위
최중호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이름이 없는 장교의 묘비가 있다. 현충원에 있는 많은 묘비 중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묘비다.



제54묘역 1659호에 있는 김 소위의 묘비. 그의 묘비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이름이 없는 장병이라면 무명 용사라 해서 현충탑 아래에 있는 위패 봉안실에 모셔야 할 텐데, 이곳에 모셔져 있다.
‘육군소위 김 의 묘’라 새겨진 제54묘역의 장교의 묘비. 이곳에 모셔진 김 소위는 한국전쟁 때 처음 전장에 나간 신임 소위였다. 1950년 8월 27일, 경북 안강지구에 있는 도음산 전투 현장이다. 이곳 능선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던 황규만 소위는 소대원들과 함께 북한군의 거센 공격에 대항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한 소대장이 맨 앞에 서서 소대원을 이끌고 산 아래 골짜기에서 능선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제1연대 소속 갑종 간부 1기 출신인 김 소위라 말한 후, 이곳 부대가 공격하지 못해 지원해주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고 하였다.
김 소위는 황 소위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김 소위는 “북한군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었다. 이에 황 소위가 “저 높은 고지와 옆의 능선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황 소위도 이곳에 배치 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아 적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김 소위는 황 소위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이곳의 지형 정찰을 하겠다며 낮은 포복으로 10m 정도 능선을 기어 올라갔다. 이때 북한군의 기관총 소리가 나며 김 소위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황 소위는 급히 개인호에서 기어 나와 김 소위가 있는 곳으로 가 발목을 잡고 능선 아래로 끌어내렸다. 김 소위는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황 소위는 소대원들과 함께 대검으로 땅을 판 후, 임시로 김 소위의 시신을 소나무 아래에 묻었다. 그리고 묘를 표시하기 위해 큰 돌을 하나 주워 무덤 앞에 놓았다.
북한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자 황 소위와 그곳에 있던 병사들도 후퇴를 하였다. 후퇴하면서도 황 소위는 전쟁이 끝나면 이곳에 와서 김 소위의 묘를 다시 안장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황 소위는 항상 김 소위를 생각하며 지냈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김 소위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황 소위도 대령으로 진급하여 1군 사령관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그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김 소위에게 아무 일도 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김 소위를 돌봐줄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었다.
황 대령은 안강·기계 북방의 어느 고지에 임시로 매장해 놓았던 김 소위의 유해를 찾기로 하였다. 1964년 5월 7일. 참모장의 허락을 받아 L-19 연락기를 타고 단숨에 그 옛날 전투가 치열했던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경주 주변에 있는 간이 활주로에 착륙한 후, 위생병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안강 지구로 갔다. 희미한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도음산 골짜기를 몇 번이나 헤맸지만 김 소위의 묘를 찾을 수 없었다. 14년 동안 그곳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형도 많이 변했고 나무도 울창하게 자라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도음산 골짜기를 여기저기 헤맨 끝에 드디어 큰 소나무 근처에서 표식으로 놓았던 큰 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총탄으로 관통된 김 소위의 두개골과 상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김 소위의 유골을 정성껏 수습하여 제1군 사령부 영현중대에 안치한 후 화장을 하였다.
그 후, 김 소위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하려 했지만, 이름이 없어 안장할 수가 없었다. 그는 육군참모총장에게 김 소위에 관한 사연을 청원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 승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1964년 5월 29일, 국립서울현충원에 김 소위의 유해를 안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 소위의 이름을 몰라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 의 묘’라고만 새겨놓았다.
그는 김 소위를 안장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김 소위에게 유족이 없으니 나중에 누가 김 소위의 묘를 돌봐줄 것인가? 내가 죽으면 장군 묘역으로 가지 말고 김 소위 곁에 묻혀야지. 그래야 나의 자식이라도 찾아와 김 소위에게 술이라도 한잔 올릴 것이 아닌가?’
지금은 국립현충원에도 장사병의 계급 구분 없이 묘역을 조성하는 법이 생겼지만, 그때만 해도 계급의식이 뚜렷하게 존재했었다. 채명신 장군은 본인의 뜻에 따라 장군 묘역으로 가지 않고 사병 묘역에 잠들어 계시다. 그도 당연히 갈 수 있는 장군 묘역을 마다하고 김 소위 곁에 나란히 묻히기를 원했다. 그는 전장에서 김 소위와 잠깐 만났지만, 먼저 간 전우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준장으로 진급한 후 전역을 하였다.
1990년 11월 어느 날. 육사 골프장에서 동기들과 운동을 하던 중 평소에 안면이 있던 라보현 대령을 만났다. ‘라 대령이라면 갑종 간부 1기 출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김 소위와 동기생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후, 라 대령에게 동기생 명부를 갖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라 대령은 동기생 명부를 갖고 있었다. 그는 갑종 간부 1기 동기생 명부에서 포항지구에서 전사한 김수영(金壽泳) 소위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후, 김 소위의 기록을 근거로 해서 춘천에 거주하고 있던 김 소위의 유족까지 찾을 수 있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이름 없는 장교의 묘비가 있다. ‘육군소위 김 의 묘’이다. 아직도 묘비에 김 소위의 이름을 새겨 넣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김 소위의 유족과 갑종 간부 1기 동기생들이 전쟁의 아픔과 비극적 사연을 역사적인 산물로 남겨 후세에게 전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김 소위가 전사했던 곳(도음산)에도 표지석을 세워주었고, 이곳 묘비 앞에도 전우애가 깃든 추모비를 만들어 놓았다.
추모비에는
고 육군 중위 김수영의 묘
1950년 8월 27일 경북 안강지구 도음산 전투에서 전사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에 안장하다.
1990년 현충일
예비역 육군 준장 황규만이라 새겨져 있다.

이름 없는 김 소위는 그의 끈질긴 노력 끝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게 되었고, 잃어버렸던 이름도 다시 찾게 되었다.
그와 김 소위는 전장에서 잠깐 만난 사이였지만, 긴 전우애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 황규만 장군은 2020년 6월 21일 별세한 후, 그의 소원대로 2020년 6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 김 소위 곁에 묻혔다.
(2019. 수필문학.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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