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 사극(史劇) 무대
최중호
장항에 있는 송림 산림욕장으로 갔다. 그윽한 솔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곳에 ‘장항스카이 워크(하늘길)’가 나온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오르면 소나무 높이에서 바닷가로 연결되는 하늘길이 열린다. 그 길 양쪽으론 소나무들이 눈높이로 서 있고, 앞에는 갯벌과 인접한 바다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슬픈 역사의 현장 기벌포(伎伐浦)다.
기벌포는 옅은 안개가 끼어있어 앞이 보일 듯 말 듯 희미하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안갯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다. 기벌포 해안은 옅은 안개로 장막을 친 연극 무대와 같았다. 장막 뒷무대에선 무슨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을까?
기벌포 갯벌 무대에서 3막 3장의 사극(史劇)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서기 660년 백제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를 침략하기 위해 신라는 김인문을 당나라로 보내 원군을 청한다. 이에 당나라는 소정방에게 13만 대군을 주어 신라를 도와 백제를 공격하기로 한다. 소정방은 군사를 이끌고 산둥반도를 출발해 덕적도를 거쳐 기벌포로 온다. 여기서 백제 명장 의직의 1만 군사와 싸워 이기게 된다. 그 후 소정방의 당나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군과 연합해 사비성을 함락하고 1막 1장의 사극은 끝이 난다.
이어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된 백제는 의자왕을 비롯해 여러 왕족과 대신들이 이곳 기벌포를 지나 당나라로 끌려간다. 이에 백제의 장군 복신과 흑치상지 등이 백제 부흥운동을 시작한다. 그들은 일본에 체류 중인 백제의 왕자 부여풍을 모셔와 왕으로 옹립한 후 일본에 원군을 청한다. 일본군이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668년 8월에 이곳 기벌포로 온다. 여기서 당나라의 두상(杜爽)이 이끄는 170여 척의 수군과 1천여 척의 일본군이 전투를 시작한다.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군은 먼저 당나라군을 공격하지만, 전술의 차이로 네 차례나 패하고 함선도 400척이나 불에 탔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친 기벌포 해전의 패배로 백제의 사직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끝으로 기벌포의 세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켰지만, 당나라는 본국에서 파견한 관리로 옛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의 영토를 통치하려 했다. 이에 신라의 신문왕은 완전한 승리를 위해 당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만 했다. 676년 11월 시찬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기벌포에서 당군과 싸워 첫 번째 전투에선 실패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당군 4,000여 명의 목을 베고 기벌포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이렇게 해서 동북아 최초의 국제전쟁터였던 기벌포에선 세 차례의 치열한 해전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날 아픈 상처를 감추기 위해 기벌포 해안엔 옅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나 보다.
(2016. 수필문학.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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