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어느 학도의용군의 편지

여강 선생 2018. 12. 29. 19:32

                                                       어느 학도의용군의 편지 
                                                  

                                                                                                                     최중호
  포항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으로 갔다. 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해 목숨을 바친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기념관은 탑산 중턱에 있어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이 찼다. 기념관 입구에 학도의용군 마크가 있다. 둘레에 월계관이 있고 중앙에 큰 별 하나가 있다. 별 뒤로 총과 펜이 각각 대각선으로 있고 독수리가 펜을 잡고 비상하는 형상이다. 학생들이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 승리한다는 걸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마크 아래에는 학도의용군이 재학했던 학교별 참전 의용군 수를 동판에 새겨 놓았다. 마크 양쪽으로 학생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학도의용군과 관련된 유물과 사진, 무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가지 유물 중, 어린 중학생임을 표시하는 ‘중’이라 새겨진 여러 개의 녹슨 교복 단추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포항여중에서의 학도의용군 전투 장면도 눈길을 끈다. 그 옆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사진이 한 장 있다. 교모(校帽)를 쓰고 있는 중학생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의 눈길에 사로잡혀 한동안 그 사진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기념관에서 나온 뒤에도 그의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기념관 뒤쪽으로 나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포항지구 전적비’가 있다. 학도의용군이 군인과 함께 나란히 총을 들고 서 있는 형상의 전적비다. 

  전적비 뒤쪽에도 큰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비 옆에는 커다란 펜대가 세워져 있다. ‘무슨 비일까?’ 궁금하게 생각하며 비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 보았다. 비는 전시관에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바로 그 중학생의 비였다. 그는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했던 고(故) 이우근 군이었다. 그가 포항여중 전투 중 어머니께 쓴 편지를 비석에 새겨 놓은 것이다.
  그의 편지는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로 시작되었다. 이어 두 명의 특공 대원과 함께 적에게 수류탄을 던져 10여 명을 죽였고, 이때 적의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가혹한 죽음 앞에 같은 동족이면서 죽여야 하는 것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의문과 함께 공포를 느낀다. 71명밖에 안 되는 학도병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적군에 대한 두려움도 편지에 적고 있다. 그는 두려운 마음을 어머니께 편지를 쓰면서 조금 진정시킨다.
  그는 다시 전쟁이 끝나면,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다.’며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
  편지를 읽으며 섬뜩한 예감이 드는 구절도 있다. 그는 흰 내복을 빨아 입으면서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壽衣)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전투에서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에 있는 많은 수의 적을 보며 어머니께 자신이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그에게 수의를 생각하게 했고 그것이 그의 죽음을 예시한 것 같아 가슴이 더 뭉클해진다.
  그는 죽음을 생각한 후 다시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그는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돌아가 상추쌈과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마시고 싶다고 한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고, 많은 적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으로 인한 갈증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눈앞에 달려드는 적군을 보며 어머니께 쓰던 편지도 끝을 맺는다. 편지의 마지막에 안녕이라고 했다가, 안녕이 아니라면서 다시 쓰겠다고 한다. 여기서 안녕이라고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눈앞에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조국을 지키다가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겠다던, 고 이우근 군은 편지를 다시 쓰지 못했다. 끝내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포항여중 전투에서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포항여중 전투는 71명의 학도의용군이 많은 수의 북한군을 맞아 싸우다가 48명이 전사했다. 이 전투는 학도의용군이 목숨을 바쳐 적의 진격을 지연시킨 전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1950년 8월 10일, 피맺힌 절규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는 그의 군복 주머니에서 피로 얼룩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어린 중학생이 전쟁에서 느꼈던 전쟁의 공포와 참상,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꾸밈없이 편지의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였을까?’ 전시관에서 보았던 사진에서 그의 표정이 그렇게 애처롭게 보였던가 보다.

  그곳에서 다시 계단을 더 오르면 산 정상에 ‘전몰학도 충혼탑’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1,394위의 학도의용군 영령들을 모신 성스러운 탑이다.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젊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충혼탑. 충혼탑은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켰던 포항 시가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2017. 에세이문학.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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