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와 사람이 이룬 기적
최중호
명량대첩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벽파진으로 갔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이 있기 전날까지 16일간 주둔했으며, 왜군과 두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다.
전체가 바위로 된 작은 산 정상에 ‘충무공벽파진전첩비’가 세워져 있다. 비는 규모도 클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선 보지 못했던 독특한 모양으로 되어있다. 거북이 등 위에 세워진 비신(碑身)의 머릿돌 모양이 특이하게 생겼다. 대부분의 비(碑)는 비신의 머릿돌에 용을 돋을새김하였는데, 이곳의 비는 달랐다. 두 마리 용이 각각 머리를 쳐들고 좌·우를 감시하는 모양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까치 두 마리가 비신의 머리 위에 각각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예로부터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새라 하였다. 또한, 도교에서는 ‘예언을 상징하며 적의 매복을 암시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까치는 장군께 무슨 소식을 전하려고 왔을까?’
전첩비에서 내려와 해남 우수영관광지에 있는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갔다.
그곳의 명량대첩전시관에는 거북선 실제 모형과 절개 모형, 판옥선 등이 전시되어 있고,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등 명량대첩에 사용했던 각종 무기와 깃발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기념공원에는 장군의 어록비를 비롯해 울돌목의 의병항쟁, 명량대첩탑 등, 명량대첩과 관련된 많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공원의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 울돌목으로 가는 데 바닷물 속에 작은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울돌목의 회오리 물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장군의 동상이었다. 장군은 손에 지도를 들고 회오리 물살을 바라보고 계셨다. ‘장군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13척의 배로 수많은 왜군을 맞아 어떻게 싸울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책이 서지 않는 불리한 전투다.’ 그래서 고뇌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장군은 어떤 전략으로 왜군을 무찔렀을까?’
이곳에 오기 전, 벽파진전첩비 위에 앉아있던 두 마리의 까치가 생각났다. ‘까치는 장군께 무슨 소식을 전했을까?’
정보를 탐색하러 나갔던 임준병과 포로로 잡혀갔던 김중걸이 돌아와 왜군이 곧 쳐들어올 것이란 정보를 장군께 전했다. 이에 장군은 명량대첩 하루 전날 군영을 벽파진에서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적은 수의 배로 많은 왜군을 맞아 싸우기엔 벽파진보다 수로(水路)의 폭이 좁은 울돌목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러 장수에게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란 말을 했다.
그렇게 고뇌하던 그날 밤, 장군의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싸움에서 이기는 전략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명량해전이 시작된 것이다.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맞아 싸운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싸움이었다. 많은 수의 왜선에 놀란 조선 수군 장수들은 싸우기를 주저하고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장군의 배가 맨 앞으로 나가 왜군과 싸웠으나, 조선 수군의 장수들은 뒤에서 관망만 하였다. 이에 장군이 참전할 것을 독촉하자 그제야 참전을 하였다. 여기서 적선 31척이 격파되고 왜장이 죽었다. 기세가 꺾인 왜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마침 울돌목의 물길이 왜선에게 불리하게 바뀌면서 배를 돌려 후퇴하려다 서로 부딪쳐 파선된 배도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해서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세계 해전사에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큰 승리를 거둔 것이다.
명량에서 조선 수군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명량대첩 전날 장군의 꿈속에 신인이 나타나 전술을 알려주었고, 울돌목의 물길이 갑자기 조선 수군에게 유리하게 바뀌었으며, 목숨을 걸고 싸웠던 조선 수군과 지역 의병들 때문이었다.
따라서 명량대첩은 하늘과 바다와 사람이 이뤄 낸 기적의 승리였다.
울돌목의 회오리 물살이 조금 전에 봤던 것과 다르게 변했다.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진도대교 위에 세워진 붉은색 탑이 물 위로 비춰 핏빛 바다가 된 것이다. 붉게 물든 바다가‘명량해전에서 패한 왜군들이 흘린 핏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군은 아직도 울돌목에서 왜군들의 피로 물든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2018. 한국수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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