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의 비밀
최중호
머금은 해를 토해내는 토함산(吐含山)과 달을 삼키는 함월산(含月山). 두 산자락에서 흐르는 물이 사이좋게 만나 대종천이 되어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로 흐른다. 그 앞에 여러 개의 바위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대왕암이다.
이십여 년 전 봉길리 앞바다에 대왕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주로 갔다. 봉길리로 가는 길에 두 기의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와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이곳은 감은사(感恩寺)라는 절이 있던 곳으로 절은 없고 그 흔적으로 남은 삼층석탑만 두 기(基)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동탑과 서탑. 그 우람한 자태에서 지난날 웅장하고 화려했던 감은사의 전경과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려는 신문왕의 효심을 그려볼 수 있었다.
대왕암을 보고 싶은 마음에 포구로 가 배를 빌리려 했으나,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었고, 들어가려면 월성 군수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았다는 이견대(利見臺)에서 멀리 있는 대왕암을 바라만 보다 돌아온 적이 있다. 그 후 가끔 대왕암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갈 수가 없어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며 지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울산에도 대왕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한 일이다. 대왕암이라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울산에도 대왕암이 있다니? 궁금해서 울산에 있는 문우한테 연락을 해봤으나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 뒤로 울산에 있다는 대왕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 지난여름, 울산에 갈 기회가 있어 관광도 할 겸해서 울산광역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 대왕암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울산으로 가는 길에 다시 감은사지(感恩寺址)를 찾았다. 지난날 찾아온 적이 있어 동탑과 서탑이 안면 있는 사람처럼 나를 반긴다. 전에는 초면이라서 어색했지만, 오늘은 구면이라서 달랐다. 탑에 대해 친근감이 갔고 관심도 생겼다. 왜 탑을 한 기만 세우지 않고 두 기나 세웠을까?
학계에서는 삼국통일 직후 건축양식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절의 조감과 아름다운 배치를 위해 하나의 본존불(本尊佛)에 두 기의 탑[雙塔一金堂]을 세웠다고는 하나,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감은사가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아들인 신문왕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완공했다면, 두 기의 삼층석탑은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뜻으로 세워졌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짝이 있게 마련이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해가 있으면 달이 있으며,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왼손이 있으면 오른손이 있게 마련이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도 마찬가지다. 석가탑이 훤칠한 키에 잘생긴 남자를 상징한다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양의 다보탑은 여자를 상징하지 않는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대왕암이 두 곳에 있다는 사실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부부가 된다. 그렇다면 문무대왕릉도 왕비와 함께 합장했던지, 아니면 두 분의 능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봉길리에 있는 대왕암이 문무대왕릉이라면, 울산에 있는 대왕암은 왕비의 능이 아니겠는가?
울산에 있는 대왕암으로 갔다.
가는 길에 있는 송림(松林)이 우거진 대왕암 공원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길쭉길쭉 자라 하늘을 향해 높이 서 있다. 선비의 기품을 풍기려는 듯 그윽한 솔 내음이 걷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상쾌하게 한다. 아늑한 송림길을 지나자 앞이 확 트이면서 해안 절벽과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보인다. 울기등대 앞바다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은 거대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다. 황갈색 빛이 도는 바위와 푸른 바다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모습 또한 장관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대왕암(댕바위)이라 부른다. 문무대왕비가 문무대왕을 따라 동해의 호국용이 되기 위해 바위로 변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곳이 대왕암이라면 왕비의 유해는 어디에 모셨을까? 바위들을 둘러보며 어디엔가 있을 왕비의 유해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럴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수수께끼처럼 얽힌 생각을 정리하며 유해를 모신 곳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해 아쉬운 마음만 남기고 돌아가는 길에, 대왕암 입구에 한 쌍의 돌고래가 물 위로 치솟아 오르는 조형물이 보인다. 이곳에 올 때 먼저 경관이 좋은 철교가 있는 곳으로 갔기 때문에, 조형물이 있는 곳은 자세히 둘러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형물이 있는 쪽으로 가 보았다. 조형물 뒤에는 황갈색 바위들과 파란 바닷물이 조화를 이뤄 사진을 촬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러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맴돌이한 후 빠져나간다.
이곳은 물이 들어오는 입구가 좁고 안이 커다란 호리병처럼 둥글게 생긴 곳에 파란 바닷물이 들어와 있다. ℧형상이다. 그 형상이 너무 멋져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캠코더로 촬영하려는 순간, 파란 바닷물 가운데 왕비가 누워계신 게 아닌가?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캠코더에서 눈을 뗀 후 다시 맨눈으로 보았다. 물 한가운데 누워있는 것은 왕비가 아니라 여자 모양으로 된 바위였다. 참으로 신기했다. 여자는 한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태(胎)에서 열 달을 기다리며 편안한 시초의 삶을 산다. 태는 태아를 둘러싼 조직으로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태아를 보호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자가 누워있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은 바위가 둥글게 둘리어 있어 마치 어머니의 태속에 아기가 들어있는 형상이다. 또한, 아기 주변에 있는 바닷물은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양수(羊水)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자연이란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태와 같은 곳으로, 사람이 생을 마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영혼의 안식처라 할 무덤도,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태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혼이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자리를 명당이란 이름으로 후손들에게 복은 빌어주고 화는 멀리하도록 해주는 곳으로 알고 있다.
울기등대 앞 대왕암에 문무대왕비의 모습이 보인다. 바위들이 둥글게 둘리어 있어 외부의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줄 그런 아늑한 자리에 왕비가 누워계신 것이다.
봉길리 앞바다의 문무대왕릉과 문무대왕비가 계신 울산의 대왕암은, 사후(死後)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막아주려는 왕과 왕비의 호국용(護國龍)의 전설이 깃든 동해의 샘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왕암에서 구전으로만 떠돌던 문무대왕비의 모습을 보았다. 신라인들이 왕과 왕비까지 신격화해서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이 오늘따라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2007. 에세이문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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