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거꾸로 선 소나무

여강 선생 2018. 6. 27. 11:40

                                           거꾸로 선 소나무
                                          

                                                                                      최중호
  고려 시대 유학의 본향이자 조선 시대 선비들의 정신적 기반인 경북 순흥에 있는 소수서원*으로 갔다.
  매표소를 지나 서원으로 가는 길옆에 늘어선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호젓한 소나무에서 풍기는 그윽한 솔 내음이 코끝에 스며들자 그 옛날 선비들의 맑은 정기가 내게로 전해오는 듯 싶다.

  소나무 길이 끝나자 서원의 담장 밖 오른쪽에 경렴정이란 정자가 보인다. 옛날엔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호연지기의 기상을 길러주기 위해 시를 짓고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정자에 앉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렴정 뒤편으론 맑고 시원한 죽계천이 흐르고, 죽계천 건너편엔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을 짓고 건립했다는 취한대(翠寒臺)와 연화산이 보인다. 죽계천 맑은 물빛과 연화산의 푸른 기운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 하여 정자의 이름을 ‘취한대’라 지었다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연과 벗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던 주세붕 선생의 안목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학생들을 가르쳤던 강학단이 있고, 강학단 옆으로 안향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文成公廟)*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적을 보관했던 장서각과 주희, 안향 등 다섯 분의 초상을 모신 영정각 등 서원의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서원을 구성했던 건물들을 하나하나 돌아본 후 옥계교를 건너 소수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제 서원 밖으로 나가는 일만 남아 있다. 나가는 길에 경렴정에서 보았던 죽계천의 경치가 너무 좋아 다시 경렴정으로 갔다.
  죽계천 건너편 바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흰색으로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겨진 글자와 그 아래에 붉은색으로 경(敬)자가 새겨져 있다. ‘왜, 하필이면 붉은색 글씨로 경자 한 자만을 새겨 놓았을까?’ 붉은색으로 새겨진 경자를 바라보는 순간,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색으로 된 경자에 의문을 갖고 죽계천을 바라보는데 물 위에 비친 경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붉은 색깔로 새겨진 경자는 흐르는 물에도 흩어지거나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죽계천 물 위에는 붉은 색깔의 경자 외에도 또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거꾸로 서 있는 소나무의 그림자였다. ‘소나무가 어째서 바로 서 있지 않고 거꾸로 서 있을까?’ 거꾸로 서 있는 소나무 그림자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소나무는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한다 하여 우리는 꼿꼿한 선비의 절개와 기개로 비유해 왔다. 기개와 지조를 갖춘 선비가 왜 바르게 서 있지 못하고 거꾸로 서 있단 말인가? 거꾸로 서 있는 소나무는 정상적인 소나무의 모습이 아니다. 소나무 그림자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채 소수서원을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금성대군 신단(錦城大君神壇)으로 갔다.
  금성단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정문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금성대군의 신단은 사각으로 둘리어 있는 담장 안에 있었다. 정면에 금성대군의 넋을 기리는 제단이 있고 바로 옆에 순의비(殉義碑)*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정면의 왼쪽으로 순흥 부사 이보흠을 모시는 단이 있고, 오른쪽에 많은 유생을 모시는 단이 있었다.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금성대군은 단종의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이곳 순흥 땅으로 귀양을 왔다. 그는 이곳에 와서도 순흥 부사였던 이보흠과 더불어 지역에 있는 유림과 함께 다시 단종의 복위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순흥부에 있던 노비의 고발로 단종복위 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복위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참형을 받아 죽게 되었다. 또한, 그 사건으로 인해 당시의 행정구역이었던 순흥부마져 그때 폐지되고 말았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에게 씌워졌던 죄도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숙종 때에 와서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그동안 폐지되었던 순흥부도 다시 부활되었다. 그때 순흥 부사로 부임해 왔던 정중창이 금성대군이 귀양 왔던 자리에 처음으로 단(壇)을 만들어 주었고, 그 뒤 영조 때 경상감사로 있던 심성희가 단을 서쪽으로 30~40보 정도 옮긴 후, 단을 새로 정비하고 순의비를 세워줬다고 한다. 목숨을 바쳐 불의에 맞서 종묘사직을 옳게 지키려 했던 그들의 값진 희생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죽계천 물 위에 비친 붉은 색깔의 경자와 거꾸로 보였던 소나무가 다시 생각이 났다.  
  이곳 순흥에서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시신은 죽계천에 던져졌고 그들이 흘린 피가 죽계천을 붉게 물들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기에 그들이 흘린 피가 7km나 떨어진 곳까지 흘러갔다 한다.
  그때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의 원혼이 죽계천에 머물렀던 것일까? 밤이면 슬픈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죽계천에서 들려 서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였다.
  이에 주세붕 선생이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첫 글자를 따 바위에 경(敬)자를 새기고 붉은 색칠을 한 후, 원혼들의 넋을 달래는 제를 지내니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전한다.
  이제 죽계천에서 거꾸로 보였던 소나무에 대한 의미를 알 것만 같다. 충의로운 선비들이 죽었으니 그 모습이 바로 서 있을 리가 없다. 그래 자신들의 쓰러진 모습을 그림자로 보여 주려 했던 것 같다. ‘불의에 맞서 항거 한 번 못하고 죽임을 당했으니 그 한이 얼마나 컸을까?’ 그리 생각하며 금성단을 나오는데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다. 금성단에 내리는 비는 이곳 순흥에서 단종을 다시 모시려 했던 금성대군을 비롯한 많은 의사(義士)들이 흘린 눈물이 비로 변한 것 같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조심스레 운전을 하며 얼마를 달렸을까. 순흥 땅을 벗어나자 비가 그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가 떴다.

 

* 소수서원(紹修書院) :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 선생이 안향의 연고지에 사당을 세우고 위패를 봉안한 후, 다음 해에 학사(學舍)를 건립하고 백운동서원이라 하였고, 퇴계 이황 선생이 명종 임금께 건의하여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사액(賜額)을 받아 소수서원이라 하며 국가에서 공인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임.
 * 문성공묘(廟) : 보물 제1402호로 안향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후에 안보와 안축, 주세붕을 함께 모셨다.
 * 순의비(殉義碑) : 의(義)를 위하여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
 * 경천애인(敬天愛人) : 하늘을 숭배하고 사람을 사랑함.           
 
                                                                                      (2011. 월간문학.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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