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최중호
8월 17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갔다. 젓갈의 고장 강경을 거쳐 부여군 양화면 쪽으로 달렸다. 면 소재지인 입포(笠浦)를 가로질러 강변 쪽으로 가니 제방 왼쪽에 비단강(錦江)이 흐른다.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실개천들이 모여 비단처럼 아름다운 강이 되었다는 비단강.
강변의 갈대꽃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빗질한 여인의 머릿결처럼 윤기가 흐른다. 갈대를 보자 문득,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갈댓잎으로 배를 만들어 강물에 띄우던 일이 생각나, 갈대가 우거진 강가로 갔다. 갈댓잎을 따 배를 만들어 강물에 띄웠다. 갈댓잎으로 만든 배는 물의 흐름을 따라 하류 쪽으로 흘러갔다. 또 한 잎을 따 배를 만들어 띄웠다. 먼저 떠나간 배를 따라 하류로 간다. 배를 몇 개나 만들어 띄웠을까? 갈잎 배들은 어느덧 하나의 선단(船團)을 이뤄 하류 쪽으로 흘러갔다.
갈잎 배가 떠내려간 하류 쪽으로 갔다. 얼마나 갔을까. 강변으로 난 제방이 끝나면서 나지막한 산 아래, 유왕산 천하대장군(留王山天下大將軍)이라 새겨진 장승과 솟대가 길을 안내한다.
그러면 여기가 바로 유왕산(留王山)이란 말인가? 유왕산이란 이름은 전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이 산이 유왕산인 줄은 미처 몰랐다. 백제 멸망의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는 유왕산.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 언덕이 많은 뱃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면, 유왕산 언덕은 불타버린 사비성을 뒤로하고 피눈물을 뿌리며 당나라로 끌려가신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의 한이 묻혀있는 곳이 아닌가.
장승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갔다. 길옆 옹달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갈증 난 길손의 목을 축이기엔 안성맞춤이다. 그곳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유왕산으로 오른다. 유왕산으로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고, 계단 양쪽에 서 있는 밤나무들이 말없이 나그네를 맞는다. 계단을 하나둘 밟으면서 오르다가 숨이 가슴에 찰 무렵이면, 산 정상에 있는 정자와 그 아래 있는 비(碑)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비의 정면엔 백제유민정한불망비(百濟流民情恨不忘碑)라 새겨있고, 뒷면엔 ‘찢어지는 가슴 억새로 동여매며 떠나가는 배를 향해 마지막 절을 올렸던 망배산! 그들이 두고 간 정은 유왕산 자락에 낙엽 되어 떨어지고, 핏빛 한은 그렇게 세월 속으로 묻혀갔습니다….’로 시작된 김정은 유왕산 추모제 추진위원장의 글이 구구절절 눈물이다.
의자왕과 태자 그리고 백제 유민들의 아픔을 추모하고, 그들을 잊지 못하는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불망비(不忘碑). 비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천삼백여 년 전 설움에 젖었던 백제 사람이 된 심정이었다.
유왕정(留王亭)으로 올라갔다. 사비성(泗沘城)에서 높고 낮은 산모퉁이를 돌아온 비단강이 그곳에선 한눈에 보인다.
660년 8월 17일.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의자왕을 비롯한 태자와 군신 등 포로 12,895명을 군선(軍船)에 싣고 당나라로 갈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이 산에 올라 떠나시는 왕과 가족들을 태운 배가 잠시 이곳에서 머물기를 바랐다.’하여 유왕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당(羅唐) 연합군에게 패한 의자왕이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가실 때 많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올랐다는 유왕산. 여기선 비단강의 물줄기를 멀리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이곳에 올랐던가 보다.
강변을 따라오면서 띄웠던 갈잎 배들은 지금쯤 어디까지 흘러갔을까? 갈잎 배가 떠내려간 강물을 보며, 그 옛날 이 강물을 따라 당나라로 가셨던 의자왕과 백제 유민(遺民)들을 생각해 본다.
사비성에서 물길을 따라 이곳 유왕산까지는 오십 여리. 뱃길로는 적어도 하루 정도가 걸릴 거리이고 보면,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 자식과 이별을 하고 떠나오는 뱃길은 얼마나 지루하고 고달팠을까?
가시는 임들을 이곳에서 못 보면 살아생전엔 다시는 볼 수가 없는 것을…. 유왕산에 올랐던 여인들은 가슴을 조이며 임금과 가족들을 태운 배가 포구에서 잠시 머물길 간절하게 바랐다. 하지만 무정한 뱃길은 이곳에서 머물지 않고 물길 따라 유유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흐르는 물길을 잡아둘 수만 있다면 그리운 임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으련만….
조용했던 유왕산 자락이 땅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통곡 소리는 산 정상에서 강 쪽으로 퍼져나갔다. 떠나가던 배에서도 “이대로는 갈 수 없다”며,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유민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산 정상에까지 울려 퍼졌다. 가지 말라 통곡하는 여인들, 못 가겠다며 몸부림치는 선단 유민들의 울음소리가 허공에서 만나 눈물바다를 이뤘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그 이름처럼 아름답기만 하던 비단강이 오늘은 슬픔의 눈물로 비단 자락을 적시고 있다.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 그리고 유왕산에서 임금의 선단을 붙잡아 두려던 백제 여인들이 흘리는 눈물이 아닌가?
유왕정 아래엔 묘(墓)라고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봉분이 평지처럼 되어버린 두 기(基)의 묘가 있었다. 묘는 전쟁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떠나시는 의자왕을 바라보며 엎드려 통곡하는 형상이다. 그 묘에서 "대왕이시여, 백성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울부짖던 옛날 백제 여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여인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유왕산에서 내려와 신성리 갈대밭*으로 갔다. 강가에 펼쳐진 7만여 평의 무성한 갈대가 지나가는 바람결에도 슬퍼 서걱인다. 유왕산 아래 갓개 포구에 머물지 않고, 떠나가신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의 슬픔을 이곳의 갈대들도 알고 있단 말인가.
겨울이면 북쪽으로 날아갔던 철새들이 당나라로 끌려가신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의 슬픈 이야기를 안고 돌아올 것만 같다. 유왕산과 금강 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밭에는, 지금도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의 슬픈 전설이 묻혀있었다.
* 신성리 갈대밭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금강 하구에 있는 폭 200m, 길이 1㎞의 7만여 평의 갈대밭으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촬영지이며, 겨울 철새 도래지이다.
(2004. 월간문학.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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