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8월에 부르는 노래

여강 선생 2026. 6. 16. 09:49

                                                             8월에 부르는 노래          
                                                                                                    최중호                             

  8월은 뜨거운 달이다. 태양의 열기가 대지를 달구면 마음 또한 그 열기로 가득 차게 된다. 
  70여 년 세월의 저편에선 열화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 소리다. 그 만세 소리 뒤에는 우리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숨어있었다.
  얼마 전 중국으로 가 우리 선열들의 항일 유적지를 돌아본 적이 있다. 
  하얼빈역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권총을 들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전신상(全身像)이 모셔져 있다. 안 의사는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치며 당당한 모습으로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 안 의사는 하얼빈역 거사를 통해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렸고, 대한 남아의 늠름한 기개를 일본인에게 보여준 통한(痛恨)의 쾌거였다.
  그 후, 안 의사는 5개월 동안 뤼순감옥에 갇힌 후 교수형을 당하셨다. 그때 안 의사는 “자신이 죽은 후, 유골을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해방이 되면 고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안 의사가 이국땅에서 조국의 광복을 그리워하며 남기신 유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 의사의 유해를 조국의 품에 모시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안 의사의 영혼은 지금도 하얼빈 하늘을 맴돌며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뤼순감옥의 사형장에선 안 의사가 교수형을 당하셨다. 또한, 그곳 서감방 35호에선 신채호 선생이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36호에선 이회영 선생이 심한 고문 끝에 돌아가셨다. 두 분께선 몸져눕기에도 비좁고 차가운 뤼순감옥의 감방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 유해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조국으로 모셔왔으나, 국내에 호적이 없어 매장 허가를 받지 못해 몰래 매장을 하였다.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은 어떠했던가? 장군은 독립군 900여 명과 재향군인 및 가족 1,000여 명을 이끌고 하이린(海林)에 있는 산시(山市)로 와 주둔하였다. 그곳에서 ‘금성정미소’를 운영해 농민들의 편의를 도와주는 한편, 독립군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였다. 그 무렵 장군은 공산당원인 박상실이 쏜 총탄을 맞고 돌아가셨다. 그 후, 장군의 유해도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조국으로 돌아오신 후, 몰래 매장하였다.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했고,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분의 유해가 일제의 눈을 피해 조국으로 돌아오셨다. 하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에 묻히신 분들도 많다. 꿈에도 그리던 내 조국인데 죽어서도 떳떳하게 돌아오지 못하고, 그렇게 숨겨서 돌아오셨다. 통탄할 일이 아닌가?
  8월이면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다. 광복절 노래다. 이 노래를 지으신 정인보 선생은 일찍 중국으로 망명해, 신채호, 박은식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래 이국땅에서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하신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을 그렇게 잘 표현하셨나 보다. 눈을 감고 조용히 광복절 노래를 불러 본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첫 번째 행은, 나라를 등지고 독립운동을 하신 우리 선열들이 얼마나 조국을 그리워하셨을까? 그래 해방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와 밟는 흙도 다시 만져보자고 하셨을 것이다. 그들은 조국 광복이 좋아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때, 눈앞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자신의 심정과 같을 것으로 생각해, 파도가 출렁이는 것을 보고 조국 광복을 바다까지도 좋아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였으리라.
   둘째 행에선, 독립운동을 하면서 많은 선열이 조국 광복을 보길 원했으나, 이미 타국에서 돌아가신 동지들은 광복을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고, 가슴 아파한다.
  셋째 행은, 한일 합방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후, 40여 년 만에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해방이란 쉽게 얻은 것이 아니고, 우리 선열들이 독립을 위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소중한 결과라 생각하였다.
  마지막 행은, 많은 희생을 통해 어렵게 되찾은 이 나라를 우리 모두 다 함께 계속해서 잘 지켜나가자는 맹세라 하겠다.
  광복절 노래를 되뇌며 우리는 먼저 가신 선열님들께 무어라 말할 것인가. 송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8월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도 이 땅 위에 뜨겁게 불타고 있다. 우리 모두 먼저 가신 선열들을 생각하며, 8월의 노래를 다시 한번 힘차게 불러보자. 
                                        (2022. 수필문학. 8월호)   
         
       

'최중호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의 배신  (2) 2026.04.12
여름 그 바닷가  (0) 2026.03.26
나의 수필 작법(최중호)  (0) 2026.02.22
경교장에 울린 총소리  (2) 2026.01.16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4)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