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최중호
요즈음 과다한 세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재산세를 내고 다시 종부세를 내는 것은 이중과세라 해서 위헌소송을 냈다고 한다. 그도 그렇지만, 문제는 지난해보다 종부세가 너무 많이 오른 것이다.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올라 그에 따른 종부세도 몇십 배에서 몇백 배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렇듯 과다한 세금은 국민들에게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불만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해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도 있다.
40여 년 전 ㅊ공고에서 3학년 담임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 같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을 하였다.
공업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 해서, 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해 사회로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학생들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실업계고등학교에는 3학년 학생들만 응시할 수 있는 의무검정이란 시험제도가 있었다. 이 시험은 3학년 학생들만 1년에 한 번 이론 시험을 면제해 주고, 실기시험만 합격하면 기능사 2급 자격증을 주는 제도였다. 학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ㅊ공고 학생들은 의무검정에서 높은 합격률을 자랑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허점이 있었다. 문제는 의무검정이 끝나면 3학년 학생들의 출석률은 저조했다. 학교에 와도 이미 교과 진도를 다 나갔기 때문에 교사는 수업 시간 운용이 힘들었고, 학생들은 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에 수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지각은 물론, 조퇴, 결석까지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등교해 봤자 학교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성실한 학생들은 등교를 잘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좋은 기회라 생각해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였다.
학생들의 출석률을 향상시킬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한 번 건드려보기로 하였다.
대부분 공고 학생들은 가정이 빈곤했다. 그들 중에는 적성이 맞아 진학한 학생들도 있지만, 공부는 잘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마지못해 공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학에 진학하는 게 꿈이었다. 직장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 졸업생의 보수 차이가 컸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돈이었다. 그들은 돈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푹 죽었기 때문이다.
일을 한번 저질러 보기로 하였다.
종례 시간이다. “여러분의 출석률이 저조해 그걸 올리는 방법으로 벌금제도를 만들었다. 앞으로 지각하는 학생은 100원, 조퇴는 500원, 결석은 1,000원씩 벌금을 걷도록 하겠다. 부득이한 경조사나 몸이 아플 경우는 제외하기로 한다.” 민주적으로 학생들과 협의해서 결정한 일이 아니다. 나 혼자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강제 규정이었다. 학생들은 불만이 컸지만, 불이익이 돌아올까 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벌금은 반장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총무가 보관하도록 하였다.
교사로서 부족한 행동이었지만,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 뒤로 출석률은 훨씬 높아졌다.
내일이 졸업식 날이다. 총무를 불러 통장에 입금된 돈을 확인해 보니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당시 신사용 고급양말 한 켤레가 500원이었으니, 30,500원이란 돈은 큰돈이었다.
종례가 끝난 후, 반장과 총무를 불렀다. 돈을 찾아 시장에 가 양말 61켤레를 사 오라 하였다. 그들은 양말을 커다란 자루에 담아 어깨에 메고 학교로 왔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담임 시간이다. 상장과 졸업앨범 등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후, 작별 인사를 하였다. “사회에 나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 분야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이 벌금 때문에 나에게 많은 욕을 했을 것이다. 우리 담임은 돈을 너무 밝힌다면서…. 여러분한테 욕을 먹어가며 걷은 돈이 총 30,500원이다. 그 돈으로 여기에 있는 양말 61켤레를 사 왔다. 집에 돌아가거든 아버지께 졸업 선물로 양말 한 켤레를 사 왔다며 드리기 바란다.”
지금까지 나를 향했던 의혹이나 경멸의 눈초리는 봄바람에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환호와 함께 큰 박수 소리가 났다. 남은 한 켤레는 반장을 시켜 부담임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하였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하숙집에 와 누워 있는데,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홍성에 사는 ㅅ군이다. “오늘 종례 시간에 보니 선생님의 양말이 없어 자신의 것을 드리려고 왔다.”고 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 양말을 받을 수 있겠는가. 고마운 마음에 ㅅ군과 하숙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세금)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하나 그 무서운 벌금을 돌려줬으니, 이젠 호랑이가 더 무서울 것 같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공자가어(孔子家語) 정론해(正論解)에 나오는 말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이다. 많은 세금을 걷는 정치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2022. 한국수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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