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불혹(不惑)에 다시 유혹되다

여강 선생 2025. 11. 23. 19:57

                                                                                불혹(不惑)에 다시 유혹되다
                              
                                                                                                                         최중호
  길을 걸을 때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누군가 하나쯤은 버리고 갔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른들이 길가에 버리고 간 담뱃갑(匣)을 줍기 위해 길거리를 다닐 때마다 두리번거렸다.
  그때 친구들은 취미로 무언가 한 가지쯤은 모으는 것이 유행이었다. 대부분 친구가 우표를 모았다. 우표를 모은다고는 했지만, 요즘처럼 몇 장이 하나로 붙어 있는 세트나, 사용하지 않은 우표를 모으는 것이 아니고 집으로 배달된 편지에서 우표를 떼어 모으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친구들처럼 우표를 모았다. 그래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편지 봉투에서 우표가 붙어 있는 부분을 가위로 오렸다. 그렇게 오린 우표를 물속에 담가 놓은 후 우표의 뒷면에 붙어 있던 종이가 떨어져 나가면, 그걸 책갈피 속에 넣어 물기를 말려 모았다.
  하지만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편지가 별로 없었다. 어쩌다 편지가 온다 해도 봉투에 붙어있는 우표는 많이 통용되던 몇 종류의 우표뿐이었다.
  그렇다고 용돈조차 모르고 살던 처지에 새 우표를 살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설령 돈이 있다 해도 집에서 5km나 떨어져 있는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런 까닭에 우표를 모으는 일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었다.
  친구 중에는 성냥갑을 모으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성냥갑은 화재의 위험이 있고 어느 정도 모으게 되면, 그 양이 많아 보관하는 데 불편할 것 같았다. 
  ‘무엇을 모아야 할까?’ 하고 생각한 끝에 다른 사람들이 모으지 않는 빈 담뱃갑을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담뱃갑이라면 돈이 들어갈 필요가 없고 부피도 작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빈 담뱃갑을 길거리에 버렸다. 따라서 그걸 줍기만 하면 되고, 담뱃갑은 펼쳐놓으면 평면 형태의 종이가 되기 때문에 부피가 작아 많이 모아도 보관하기에 편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담뱃갑을 모으기로 하고 길을 가다가 빈 담뱃갑을 보면 줍기 시작하였다. 담뱃갑을 처음 모으기 시작한 50년대 후반엔, 농민들이 허리띠를 졸라가며 보릿고개의 애달픔을 달래며 피웠던 ‘풍년초’나 ‘수연’ 등을 모았고,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이 피웠던 궐련(卷煙)* 담배인 ‘파랑새’와 ‘진달래’, ‘백양’ 등도 모았다.
  그리고 성년이 되고부터는 모으고 싶은 담배를 사서 피운 후 빈 갑을 모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던 담배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 다양한 종류의 담뱃갑을 모을 수 없었다. 취미로 어떤 물건을 모을 때는 그 종류가 많아야 모으는 재미가 있는 법인데, 담뱃갑의 종류가 겨우 십여 종밖에 되지 않아 별 재미가 없었다. 그래 더 많은 종류의 담뱃갑을 모으기 위해 양(외국)담배를 구해 보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양담배는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그걸 갖고 있거나 피우다가 들키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었기 때문이다. 그런 양담배도 미군 부대 PX를 통해 어렵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구한 양담배도 대부분 '팔말(PALL MALL)'이나, '말버러(Marlboro)', '윈스턴(Winston)'뿐으로 종류가 다양하지 못했다.
  그 외에 외국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몇 종류의 담뱃갑을 더 구할 수 있었다. 
  그 후 베트남 전쟁에 우리 국군이 파병되었고, 중동지역에 우리의 근로자들이 나가 일을 하면서 양담뱃갑은 구하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담뱃갑을 모았지만, 그 종류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담뱃갑도 디자인이 바뀌고, 국가 기념일에 판매되는 기념 담배가 있어 담뱃갑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기념 담배에는 국경일 등의 연도가 인쇄되어 세월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었고,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오십여 년간 모은 담뱃갑의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기념 담뱃갑까지 포함하면 1,500여 종이 넘는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담배의 종류도 많아졌고 양담배도 국내 판매가 허용되어, 슈퍼나 마트에 가면 진열대에 각양각색의 담배들이 애연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마음만 있으면 다양한 종류의 담배를 살 수 있어 모으기도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지난 정초부터 사십여 년간 즐겨 피웠던 담배를 끊게 되어 담뱃갑을 모으는데도 지장이 생겼다. 
  사람들은 나이 사십이 되면 불혹(不惑)이라 말한다. 여기서 불혹이란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십여 년간 담배를 피워왔으니, 흡연 연령으로 보면 불혹의 나이가 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 와서 흡연이 몸에 해로운 것을 깨닫고 담배를 끊게 되었는데, 아직도 철이 덜 든 모양인지 빈 담뱃갑을 줍기 위해 오늘도 길거리를 걸으며 두리번거린다. 
  흡연 나이 불혹에 다시 담뱃갑의 유혹에 빠져든 것이다.

 * 궐련(卷煙) : 담뱃잎 가루를 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를 말한다. 하지만 50년대엔 담뱃잎 가루를 봉지에 넣어 파는 담배가 있었는데, 그 가루를 신문지나 종이에 말아서 피웠던 담배가 '풍년초'나 '수연'이다.

   1962년 발매된 새나라                                                                     1950년대  백양  

                                                                                                              (2013. 한국수필. 9월호)

서민들이 피던 풍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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