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여름 그 바닷가

여강 선생 2026. 3. 26. 09:15

                                                                  여름 그 바닷가

                                                                                                          최중호
  여름엔 바다에 간 적이 없다. 남들은 피서라 해서 바다로 갔지만 가지 않았다. 바다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의 틈바구니에 끼는 것이 싫어 겨울 바다를 찾았다. 겨울 바다는 쓸쓸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 없어 좋았다. 
  여름 바다가 인파에 덮여있다면, 겨울 바다는 많은 사람이 떠나버린 자연 그대로의 바다였다. 그곳엔 기다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하늘엔 갈매기 떼 노래하는 모습과 수평선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무인도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겨울 바다는 하늘과 파도 그리고 백사장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이따금 모래 위를 걷는 다정한 연인들의 속삭임이 파도 소리에 잠겨, 수평선 저 멀리까지 밀려 나가는 겨울 바다. 그런 바다가 좋아 겨울 바다를 찾았던 것이다. 
  이런 내가 여름에 바다를 찾은 것은 ㅇ군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ㅇ군은 교직에 처음 들어와 ㅊ공고에서 가르쳤던 학생이다. 그는 전기용접 분야의 기능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기능 훈련을 했던 학생이다. 그의 기능 지도를 내가 맡았다. 열심히 훈련을 시켜보겠다는 생각으로 1년 6개월을 그와 같은 집에서 하숙을 했다. 그 후 나는 군에 입대했고, 그는 졸업 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근무했다. 
  제대 후, 나는 다시 ㅊ공고로 복직을 했으나 그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끊긴 지 20여 년, 우연히 다른 제자를 만나 그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 교직에 들어와 정이 든 학생이라 그런지 그의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 중장비 기술을 배워 지금은 중장비 수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겨울에 동료들과 함께 홍성에 갔다가 여관에 머문 적이 있었다. 시간이 있어 그에게 전화를 했으나 공사 현장에 나가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메모만 남기고 동료들과 함께 볼링장으로 갔다. 볼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혼자 따분하게 여관에 남아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따라나섰다. 
  밤늦게까지 볼링장에 있다가 여관에 돌아와 보니, ㅇ군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여관 옆 다방에서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며 다방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20여 년 만에 ㅇ군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이라 이야기도 별로 나누지 못하고, 변해 버린 얼굴만 확인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늦은 봄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여름에 가족과 함께 홍성으로 와 해수욕을 즐기고 가라 한다. 많은 사람 속에 끼어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아, “번잡해서 싫다.”고 했더니, “아직 사람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조용한 곳이라.”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싫다고 해서 아이들까지 해수욕장에 갈 기회를 막을 필요는 없었다. 이런 기회에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그래 홍성에 가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찌는 듯한 여름밤, 아내와 아이들이 바다에 갈 준비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바쁘다. 명색이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 꾸릴 짐도 많았다. 
  홍성에 도착해 그의 안내로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가 안내한 곳은 겨울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을 지나, 서산에서도 멀리 떨어진 청포대 해수욕장 부근의 한가한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 이미 땅을 임대하여 조그만 임시 건물까지 지어 놓았다.
  그는 모터보트까지 갖고 있었다. 마침 썰물 때라 뭍에 있던 보트를 내가 오면 탈 수 있도록 “포클레인까지 불러 물 위에 띄워 놓았다.”고 했다.
  보트가 파도를 가르며 질주한다. 아이들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물 위를 직진할 때는 환호성이 나왔으나, 급커브를 돌 때는 이내 얼굴이 새파래졌다. 막내아들은 무섭다고 울상이 되어 “천천히 가.”라며 소리친다. 
  뭍에서 멀리까지 가려 했으나 안개가 짙어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해변 가까운 곳을 몇 바퀴 돌고는 뭍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은 바다를 좋아했다. 물속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줄 몰랐다. 
  하룻밤만 자고 오려던 것이 이틀이나 더 보냈다.
  그곳엔 바지락 양식장이 있었다. 아이들은 해수욕하다 지치면 호미를 갖고 돌이 있는 곳을 파 바지락을 캤다. 도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 더욱 재미있어했다. 저녁 식사는 낮에 캐 온 바지락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그곳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맛조개를 잡는 일이었다. 물이 빠진 모래 위에 구멍이 있어, 그곳에 맛소금을 조금 뿌리면 갑자기 대나무 줄기 모양으로 생긴 기다란 맛조개가 분수처럼 물을 뿜으며 모래 위로 솟구쳤다. 이때 재빨리 손으로 그놈을 꼭 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맛조개는 땅속 깊이 숨어 버려 모래를 깊숙이 파도 잡을 수 없었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흘을 보냈다.
  저녁엔 숙소에 돌아와 수평선 너머로 지는 진홍빛 태양의 그림자를 보았다. 저물어 가는 태양은 마지막 광선을 수평선 위에 넓은 적자색(赤紫色) 무늬로 분산시킨 후, 그 가장자리로 숨어 버렸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숨어 버린 뒤에도 붉은 노을이 남아, 태양이 가는 길을 곱게 비추며 배웅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낮엔 해수욕과 조개잡이로 저녁엔 붉은 노을이 있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름 그 바닷가엔 물 밖이 구름이요, 구름 밖이 하늘이다. 또한 그 아래엔 하얀 조개 꿈꾸는 금모래가 있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 따라 배도 가고 나도 가고 바람도 간다. 한가한 해수욕장의 여름 바다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한 폭의 풍경화였다.

                                                                                                            (1997. 수필예술.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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