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배신
최중호
할아버지의 묘소로 가는 길에는 여러 그루의 밤나무가 있다. 후손들이 묘소를 오가면서 조상을 한번 생각해보라는 뜻일까?
어릴 적 할아버지 묘소 근처에 친구들과 함께 칡뿌리를 캐러 갔다가 밤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밤들을 주워, 묘 앞에 놓고 절을 하고 온 기억이 있다.
예로부터 밤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이나, 위패(位牌)*, 신주(神主)* 등의 재료로 쓰여 왔다. 그것은 향기가 좋거나 깎기 좋아서가 아니라 밤나무가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면 흙이 되지만, 밤은 땅속에서도 씨앗이 잘 썩지 않는다. 씨가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뿌리에 붙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과 조상과의 관계를 의미하며 조상은 항상 자신과 영적(靈的)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밤은 심은 지 3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고, 세 번 이식하게 되면 질 좋은 밤을 얻을 수 있으며, 껍질을 세 번 벗겨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
밤나무에서 자신과 조상과의 관계를 연상해 볼 수 있지만, 밤송이에서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추석 성묫길에도 떨어져 있는 밤을 몇 개 주웠다. 껍질에서 윤기가 자르르 흘러 만져보니 토실토실하다. 보통 밤송이는 세 톨의 밤이 들어 있는데 어떤 것은 한 톨만 들어있는 것도 있다.
한때는 가족계획을 하자는 뜻으로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밤송이도 세태의 풍습을 닮아가는 것일까? 밤송이 속에 잘 여문 세 톨의 밤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서 핵가족화된 요즈음 가정을 생각해 보았다. 밤송이에서 가운데 들어있는 밤이 자식이라면, 양옆에 붙어있는 밤은 부모라는 생각이 든다. 양옆에 붙어서 가운데 있는 밤을 잘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세 톨 모두 잘 여문 밤이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어 부모와 자식이 다복한 가정이라면, 가운데 알밤만 한 톨 있고 양쪽에 쭉정이가 되어버린 밤은 경제적 빈곤으로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한 부모가 아니겠는가.
잘 여문 알밤의 양옆에 쭉정이로 붙어있는 밤을 보면서, 어릴 적 동네에 살던 한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는 일찍 아내를 잃고 아들과 함께 살았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의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하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였다. 그래 농사짓는 것도 포기하고 아들의 출세를 위해 서울로 떠났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그가 서울에 올라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손쉬운 대로 지게를 지고 서울역에서 손님들의 짐을 날라 주는 일을 하며 아들의 학비를 벌었다. 일이 힘들고 고달팠지만, 아들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어려운 줄 몰랐다.
비 오는 어느 날,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일거리가 없어 한가해지자 저세상으로 간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가 지금 대학에 다니는 아들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를 맞으며 학교로 갔다. 학교에 가면서도 어머니 없이 홀아비 밑에서 말썽 없이 자라준 아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대학 정문에서 아들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나오는 아들을 보았다. 아들을 보는 순간, 그날따라 아들이 더욱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가슴이 뿌듯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그대로 갔다.
그는 아들이 자신을 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한번 크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모두 뒤돌아보았다. 아들은 태연하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우리 집 머슴이야”라고 말한 후 그대로 가버렸다.
순간 그는 아들에게서 받은 배신감과 함께 아들에게 걸었던 모든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허탈감에서 다리의 힘이 쑥 빠지면서 똑똑한 아들을 둔 못난 자신을 원망해 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일 나가는 것도 포기하고 누워버렸다.
하지만 자식인 걸 어떡하랴.
그 후,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의 모 일간지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좋은 가문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면서 키우고 가르친 잘난 아들을 뒤로하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일을 계속했다.
그의 인생을 밤송이에 비유해 보면 가운데 있는 알밤을 위해 모든 영양분을 빼앗겨 쭉정이가 된 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어떻게 생긴 밤일까?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상징하는 오른쪽 밤은 이미 쭉정이가 되었을 것이고, 왼쪽에 있는 밤도 자식을 위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별로 영글지 못한 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머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자랐기 때문에 가운데 있는 밤은 오른쪽 면은 둥글고, 왼쪽 면은 다소 경사진 토실토실한 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유한 상태에서 자라지 못해 한쪽 면이 기울게 여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밤을 다시 땅에 심었다고 생각해 보면, 그 밤송이는 내가 머물고 있던 밤송이와는 달랐으면 싶다. 나의 씨앗에서 자란 밤나무에선 어떠한 밤이 열릴까? 세 톨 모두 잘 여문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 위패(位牌) : 단(壇)이나 묘(廟), 원(院), 절 등에 모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은 나무 조각
*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월간문학. 2006.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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