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 수필

돌탑을 쌓은 뜻은

여강 선생 2025. 5. 2. 16:12

                                                              돌탑을 쌓은 뜻은
                                   
                                                                                                    최중호
  친구와 함께 보문 산길을 걷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산행 후 점심을 같이한다.
  산행길은 나무 그늘이 많아 뜨거운 여름에도 햇볕이 별로 들지 않아 걷기에 좋다. 한동안 걷다가 돌탑 앞에 이르면 숨이 차 벤치에 앉아 잠깐 쉬어 간다. 오늘은 우리가 쉬는 벤치에 한 남자가 먼저 와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하는 수 없이 그 옆 벤치에 앉았다. 심심하던 차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같이 온 친구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보문산 돌탑


  잠시 후, 벤치 앞에 있는 돌탑을 바라보았다. 누가 쌓았는지 산에 있는 돌들을 여기저기서 날라 와 공들여 쌓은 범종 모양의 탑이다. 탑 뒤로는 아름드리 참나무가 높게 자라 듬직하게 서 있다. 참나무 몇 가지는 우산을 펼친 것처럼 돌탑 위로 넓게 뻗어, 뜨거운 볕을 가려주고 비바람도 막아준다. 오늘따라 참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돌탑과 어우러져 운치를 한층 더해 준다.
  여기 돌탑도 지난번 태풍 때 탑의 윗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며칠 후에 와보니 누군가 무너진 부분을 다시 쌓아 올려놓은 게 아닌가. 공들여 쌓은 흔적이 보인다. 매일 이 길을 걸었지만, 탑을 보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군가 사람의 통행이 뜸한 시간에 와서 돌탑을 쌓은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돌탑 옆 소나무 기둥엔 빗자루 하나가 기대고 서 있다. 누가 언제 쓸었는지 돌탑 주변은 항상 깨끗했다. 누군가는 돌탑을 지날 때마다 공손히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지나간다.
  돌탑을 보며 생각해 보았다. 탑은 본래 부처의 유골이나 유품을 모신 후 공양하기 위해 쌓았으나, 요즈음은 공덕을 기리거나 치성을 드리기 위해 쌓기도 한다. 여기에 있는 돌탑은 ‘누가, 왜, 쌓았을까?’ 돌탑을 쌓은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다.
  탑 주위는 언제나 조용했다. 이따금 바람에 실려 스쳐 가는 새소리가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준다.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린다. 친구와 나의 핸드폰 벨 소리가 아니다. 분명 소리가 났는데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다. 다시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은 소리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풀벌레 소리와 같다.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다 벤치 밑을 내려다보았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만 수북이 쌓여 있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벤치 밑에서 들렸다. 벤치 밑을 자세히 보니, 갈색 낙엽 더미 사이로 낙엽 색깔과 비슷한 물건이 하나 보였다. 핸드폰이다. 그 핸드폰에서 풀벌레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주인 잃은 핸드폰은 풀벌레 소리를 내며 애타게 주인을 찾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 건너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했더니,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는 듯 안도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 여자가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산속이라 내가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 1시간 후에 다시 전화해 주기로 하였다.
  이젠 핸드폰 주인도 마음이 놓였을 것 같다. 그래도 핸드폰 주인이 애타게 기다릴 것 같아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녀가 사는 집 근처로 가 전화를 했다. 얼마 후, 40대 후반의 여자가 나왔다. 핸드폰 케이스 속에 있던 운전면허증의 주인은 60대 후반의 여자였는데, 젊은 여자가 나온 것이다. 핸드폰 주인이 아닌 것 같다. 
  “핸드폰 주인이냐?”고 묻자, “주인은 사정이 있어 자신이 대신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얼마의 돈을 주려 했다. 마음이 상했다. 돈을 받기 위해 핸드폰을 찾아준 것이 아니라, 주인의 밝은 표정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호의를 거절하고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 주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며, “언제 한 번 만나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오늘따라 다른 벤치에 앉게 되었고, 마침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우연일지라도,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돌탑을 보며, ‘이 탑을 쌓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탑을 쌓았을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산행을 하는 이유는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탑 앞에서의 일들을 생각해 보면, 나보다 먼저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더 큰 행복이란 걸 알았다.  
  오늘도 산행길에 돌탑 앞 벤치에 앉아, 돌탑을 쌓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2022. 문학 秀.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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